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마이너스 금리는 황당한 경제정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기사 이미지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벌써 20년이 넘었나 보다. 1994년 늦봄이었던가, 경주에서 금융학회가 열렸었다. 그해는 유난히 가뭄이 심했다. 안동댐의 물이 말라 간다는 지역뉴스 화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날의 정책 워크숍 주제는 ‘금융선진화를 위한 개혁과제’였다. 내가 참석했던 세션에서는 물가안정 목표제에 관한 논문들이 발표되었고 그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캐나다와 뉴질랜드가 선망의 대상이었다. 소비자물가가 매년 어김없이 5∼6%씩 올라가던 당시 물가안정 목표제의 모범사례였던 이들 나라의 2%대 물가가 너무나 부러웠다. 특히 8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우리보다 훨씬 심했던 뉴질랜드의 인플레이션이 91년 이후 1∼2%로 뚝 떨어졌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의 비상한 관심이 모아졌다. 뉴질랜드의 눈부신 성과는 제로 인플레이션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라며 우리도 아예 처음부터 제로 인플레이션을 목표로 삼자는 과격한 주장도 나왔다. 우리 경제의 장래를 놓고 목소리를 높였던 금융학회 토론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세월이 흘러 98년에는 우리나라에도 물가안정 목표제가 도입되었다. 그리고 현재의 물가안정 목표는 2.0%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1.3%였다. 유가와 농산물 가격을 빼면 대략 1.8∼2.0%가 된다. 20여 년 전 물가안정 목표제를 처음 논의하면서 학자들이 고대해 마지않던 물가 상승률이 바로 지금의 값, 즉 2% 정도의 인플레이션이었다. 우리나라와 일본, 유로존, 그리고 미국 등의 중앙은행들이 공개적 또는 암묵적으로 추구하는 물가목표도 2%다. 지금의 물가 상승률이 알고 보면 딱 적당한 수준이라는 얘기다.

기사 이미지

금리를 내려서라도 물가를 지금보다 올리자는 주장도 물론 있다. 물가가 마이너스가 되면 그게 곧 디플레이션이고, 디플레이션이 오면 경제는 끝장날 테니 물가를 가급적 올려 놓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서울의 물가가 도쿄와 오사카보다 높고, 식료품과 의류 가격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데 물가를 내리지는 못할망정 왜 지금보다 올라야 경제가 좋아진다는 건지 선뜻 공감이 가지 않는다.

디플레이션이 오면 경제가 무조건 끝장난다는 생각은 아마도 대공황 당시의 미국과 90년대 후반의 일본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 두 가지 사례는 디플레이션 시작에 앞서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버블이 붕괴되었다는 특징이 있었다. 부동산과 주식의 거대한 버블이 일시에 붕괴되면서 은행이 담보로 보유하던 부동산과 주식의 가치도 덩달아 폭락해 자금중개 기능이 심각하게 망가졌다. 그러고는 곧이어 은행위기 내지 금융위기가 뒤따랐다. 디플레이션과 심각한 경기침체에 더불어 금융위기가 동반하다 보니 실물경제가 치명상을 입었던 것이다. 이 두 가지 사례 말고는 과거 한 세기 반 동안의 인플레이션 역사에서는 마이너스 물가가 실물경제에 반드시 악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경기부양 효과가 별로 없는데도 디플레이션을 피한다는 명목으로 금리를 자꾸 내리면 무슨 일이 벌어지나? 결국 유동성 함정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결과가 된다고 본다. 만약 연이은 금리인하로 부채의 규모만 더 키운다면 머지않아 재앙을 불러올 위험도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일본과 유럽은 금리를 내리다 못해 제로금리를 했고 얼마 전부터는 심지어 마이너스 금리를 하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같은 당대의 최고 고수들이 펼치는 초식인 만큼 보통의 사람은 생각도 못 해냈을 비법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마이너스 금리란 어디까지나 경제상식에 반(反)하는 황당한 정책일 뿐이다.

은행에 돈을 맡기거나 남에게 돈을 빌려줄 때에는 이자를 받는 것이 인간 경제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시장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면 돈을 맡길 때마다, 그리고 돈을 빌려줄 때마다 마이너스 금리만큼 손해를 봐야 한다. 그러니 누가 은행에 돈을 맡길 것이며 누가 남에게 돈을 빌려주려 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금융의 자금중개 기능이란 것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나? 마이너스 금리는 금융의 자금중개 기능을 질식시키는 정책이다. 금융의 최종 보루라는 중앙은행이 이런 자기 파괴적 정책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내놓고 있으니 세상이 뒤집혔는지 경제학이 죽었는지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마리오 드라기와 구로다 하루히코가 어쩌면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들이기 때문에 나 같은 이코노미스트들이 이해를 못하는 게 아닐까라는 고민도 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탁월한 천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을 파괴하는 정책이라면 경제에 좋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경제활동이란 결국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앨프리드 마셜이 경제학이란 양심과 상식의 학문이라고 말했던 것도 이런 의미였다고 생각한다. 드라기나 구로다가 정말로 동시대 사람들이 아무도 이해 못할 만큼의 천재들이라면 그들이 정작 있어야 할 곳은 중앙은행이 아니라 상아탑 속의 연구실이어야 하지 않을까?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