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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고장에선…] '개구리 참외'가 사라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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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개구리 참외가 사라지고 있다.

'우리 입맛에는 우리 것이 최고'라는 말이 무색하게 토종 농산품 등이 외래종에 밀려 자취를 감추고 있다.

2일 오전 10시 충남 천안시 성환읍의 한 비닐하우스. 김용배(金龍培.여.45)씨는 개구리 참외를 따던 일손을 멈추고 하소연을 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개구리 참외를 찾았는데 지금은 당도가 높은 외국산 과일에 밀려 외면당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토종 농산물을 지켜 온 농민들은 농협에서 대출받은 원금은 커녕 밀린 이자 갚기도 버겁다"고 말한다.

金씨의 남편인 유용목(兪龍穆.48.성환읍 매주1리)씨는 성환 명물인 토종 개구리 참외를 24년째 재배해 온 토박이다.

兪씨는 성환의 전체 개구리 참외 재배면적 2천9백평 중 절반인 1천4백평을 짓고 있었다.

그러던 그는 지난 16일 조상 대대로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자 잠을 못이루고 헛소리를 해 보름전 입원하는 바람에 수확할 일손이 부족해 개구리 참외가 비닐하우스서 썩어 가고 있는 것이다. 국도 1호변 가판장도 부인 金씨 혼자 딴 소량의 참외로 예년보다 한달 늦은 지난달 말 겨우 열었다.

兪씨가 이처럼 토종 참외에 관심을 가진 것은 지난 80년 한 농민이 종자 보존을 위해 개구리 참외 몇 포기를 재배한다는 것을 알면서 부터다.

이웃 농민과 명맥이 끊겨가던 개구리 참외를 복원시키면서 본격적으로 재배를 시작한 兪씨는 당시 신토불이 열풍으로 돈을 솔찮게 벌었다. 개구리 참외가 당뇨.고혈압 등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높다는 입소문때문에 국도변 가판장을 찾는 승용차가 끊이질 않았던 것이다.

농협에서 돈을 빌려 4백평짜리 비닐하우스 2동을 증설했으나 몇개월 후 닥친 외환위기는 물론 태풍 올가(1999년)와 폭설(2001년)로 망가진 비닐하우스를 수리하기 위해 농협중앙회 등서 또 돈을 빌려야 하는 악순환을 겪었다.

게다가 소비자와 백화점에서는 당도가 개량종이나 외래종에 비해 값만 비싸지 당도는 떨어진다며 외면하게 됐다.

이처럼 소비자의 발길이 끊어지자 재배 농가도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갔다.

한 때 1백여 곳에 달했던 재배농가도 해마다 줄어 이제는 5곳만 남았다. 올해도 4개 농가가 참외를 뽑아버리고 오이를 심었다.

남편 兪씨는 천안시장상.농림부장관상 등 십여개를 받았다. 묵묵히 토종과일을 지켜온데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그는 천안시 농업기술센터와 협력, 개구리 참외의 최대 약점인 당도를 높이려 개량종 개발을 애써 왔다.

하지만 '토종 고집'의 결과는 참담했다. 이런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兪씨가 참외 농사를 그만두면 3백~6백평씩 짓는 소규모 재배 농가 4 곳도 다른 작물로 바꿀게 뻔하다. 내년부터 토종 개구리 참외 맛보기가 힘들 전망이어서 안타까움이 앞선다.

토종 참외=전세계적으로 참외를 먹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뿐이다. 삼국시대부터 재배된 참외는 지역별로 특이한 형태.맛을 지녔다. 이들 토종 참외들은 내병성(耐病性)이 뛰어나고 과일을 맺는 능력이 우수하나 60년대 수입종인 은천(일명 나일론 참외)과 금싸라기 참외가 들어오자 거의 자취를 감췄다.

토종참외는 감참외.홍참외.깐참외.열골참외.먹참외.쇠뿔참외.사과참외.영일참외.꿀참외.수통참외.줄참외.노랑참외.묵호참외.대성참외.강서참외.곶감참외.미꾸리참외.호박참외등 줄잡아 20여가지. 이중 개구리참외.강서참외.사과참외 등이 대표적 토종으로 이중 개구리 참외만이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개구리 참외는 일제때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아 여름철만 되면 인천항을 통해 일왕에게 보내졌는데 배편이 마땅하지 않으면 이미 선적해 놓은 다른 물품들을 내려놓고서라도 이 참외를 실었다고 한다.

또 평남 강서 지역서 재배됐던 강서참외는 시원하면서도 단맛이 뛰어나고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일품이어서 조선시대 최고로 치던 품종이다.

천안=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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