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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된 남자친구…'사랑'이라는 이름의 가해진 폭행과 감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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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박모(27·여)씨는 지난 1월 고민 끝에 아버지에게 출·퇴근길을 동행해달라고 부탁했다. ‘다시 나와 사귀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전 남자친구 황모(29)씨의 협박 때문이었다. 황씨는 집 전화와 휴대폰으로 하루에 수 십 통씩 전화를 걸었고, 박씨가 전화를 받지 않자 직접 찾아와 ‘왜 나를 피하는 것이냐’며 주먹으로 얼굴과 무릎을 때리기도 했다. 박씨가 경찰에 신고해 황씨는 지난 2일 데이트 폭력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로 구속됐다.

지난달 2일 대구 달서구에선 이별 통보에 앙심을 품은 김모(48)씨가 음주 상태에서 차량을 몰고 여자친구 이모(42)씨가 운영하는 분식집으로 돌진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김씨는 분식집 통유리를 산산조각 낸 것도 모자라 차에서 쇠망치까지 꺼내들었다. 그나마 김씨가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옛 남자친구가 휘두르는 쇠망치에 맞아 이씨가 크게 다칠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과거 연인간의 사랑싸움으로 인식되던 데이트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비화했다. 경찰청이 지난달 3일부터 한 달간 데이트폭력 집중신고 기간을 운영한 결과 1279건의 사건이 접수돼 868명이 형사 입건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582명이었던 데 비해 50% 이상 증가한 수치다. 특히 피의자 중 61명은 협박과 구타, 성폭행, 감금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 분석 결과 데이트 폭력 피해자의 92%는 여성이었다. 피해 유형은 폭력·상해가 61.9%로 가장 많았고 감금·협박(17.4%), 성폭력(5.2%)이 뒤를 이었다. 나이별로는 20~30대가 58.3%, 40~50대가 35.6%를 차지했다. 또 전체 가해자 중 58.9%가 전과자였다. 가해자의 31.2%는 전과 1~3범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데이트폭력의 경우 과거 연인사이였다는 점 때문에 집과 직장의 위치는 물론 생활패턴까지 모두 노출돼 있어 재범률이 높다는 점이다. 치안정책연구소가 2005년부터 10년간 연인간 데이트 폭력 범죄자의 재범률을 조사한 결과 76.5%에 달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경찰에 신고할 경우 더 큰 보복으로 이어질 것이 두려워 사법적 대응에 나서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경찰은 현재 데이트폭력 사건을 다룰 때 피해자 보호와 추가 피해 방지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피의자가 집 주소를 알고 있는 경우엔 임시숙소를 제공하고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를 대여해 실시간 위치추적에 나서는 식이다. 동시에 피의자에겐 ‘피해자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리고 경고장을 발송한다. 김헌기 경찰청 수사기획관은 6일 “데이트 폭력을 당하면서도 정에 이끌려 참는 등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면 남성의 집착이 더욱 강해진다”며 “적극적인 신고가 데이트 폭력의 고리를 끊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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