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910년, 내 뿌리의 시작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69호 27면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는 발레음악의 걸작이다.

누구에게나 떠올려만 보아도 가슴이 시릿한 어린 시절의 사랑이 있단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중학교 시절의 도서실이 그 중 하나다. 학교 본관에 날개처럼 따로 붙은 건물의 맨 꼭대기층인 3층에 있던 도서실은 일반 교실 두 개 정도를 합쳐 놓은 듯한 작지도 크지도 않은 공간으로 1, 2학년 때에도 책을 빌리러 이따금씩 들르던 곳이었다. 그러다 3학년이 되어 1반에 배정을 받았을 적에 나는 마음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3학년 1반은 도서실 옆 교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예 마음 놓고 거기에서 허구헌 날을 살게 된, 그 즈음이었던 것 같다. 헤르만 헤세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내가 완전히 새로운 인물들을 만난 것이. 『봄봄』 『서시』 『무정』 『건축무한육면각체』 『레디메이드인생』 『임꺽정』이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흔들어놓은 것이.


김유정, 윤동주, 이광수, 이상, 채만식, 홍명희. 지금도 나는 그들의 글을 곱씹으며 한번쯤은 다시 한국인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망상을 한다. 글자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어쩜 꼭 민트 잎사귀를 깨물 때 입안 전체로 퍼지는 알싸함이 묻어나는 것 같던 그 글들은 희한하게도 사람을 달뜨게 하는 힘이 있었다. 처량맞기 짝이 없는 그 꼬락서니들에 분명 눈물이 나는 것 같은데도 입꼬리는 올라가고 있는 것이 참으로 이상했다. 하나의 표정만 짓게 만드는 예술이 얼마나 덜 세련된 것인지를 나는 이들을 통해 배웠다.


다만 그렇게 무진장이나 세련된 이들이 모두 한 시대에 살았었다는 것이 조금 이상했을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전, 그 신세기의 문턱에 대한 나의 동경은 그렇게 찾아왔다. 그러니 내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원주여자중학교의 3층 도서실에서 그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또 모를 일이었으리라.

손열음의 새 음반 ‘모던 타임즈’.

시간이 좀 더 흘러 이미 알프레드 코르토와 마르셀 마이어에, 토마스 만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한나 아렌트에,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드바르드 뭉크에 빠진 지 오래였던 어느날, 네덜란드의 한 페스티벌로부터 이메일 하나가 날아왔다. 이듬해인 20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100주년이 되는 그 해에 모리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과 ‘쿠프랭의 무덤’을 차례로 연주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모던 타임즈’로의 여행이 그렇게 재개되었다.


알프레드 코르토가 ‘프랑스 정신의 최대 정수’라고 표현한 것이 무색하게도 ‘쿠프랭의 무덤’은 오늘날 꽤나 드물게 연주된다. 관현악을 위한 편곡이나 목관5중주를 위한 편곡보다도 피아노를 위해 만들어진 원곡이 특히 그렇다. 여섯곡 중 네곡이나 다섯 곡만, 그것도 곡의 앞뒤 순서를 조금 바꿔 묶은 편곡반을 듣다 피아노로 연주하는 원곡을 들으면 사실상 온몸이 근질근질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그저 웅얼웅얼대는 듯한 제1곡 전주곡을 지나면 심지어 작곡가 본인도 “이 곡을 과연 외워서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는 제2곡 푸가가 나온다. 세 개의 성부가 각각 어디로 향하는지를 당최 알 수 없을 것 같은 곡. 다음의 제3곡 ‘폴랑’도 그 정처없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밀함과 치밀함이 스위스 시계공 뺨을 친다는 조소까지 받던 작곡가의 세계는 자원봉사병으로 전쟁에 투신했던 길지 않은 시간 속에 완벽히 갇혀버렸다.


이 극한의 무기력의 저편에 있는 ‘라발스’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주아 드 비브르(Joie de vivre, 삶의 환희)’ 정신을 계승하기를 의도했던 작품이었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왈츠’처럼 달콤한 왈츠들이 연이어지는 작품은 그러나 말미에 이르러 하나씩 되돌아오는 왈츠들이 차근차근 박살나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반세기를 사이에 둔 두 음악의 간극이 과연 두 작곡가가 가진 음악성의 차이였을까. 그보다도 슈테판 츠바이크의 말마따나 ‘도대체 보지 않았던 것이 없는, 받아보지 못한 고통이 없는, 함께 체험하지 않았던 것이 없는’ 시대의 전횡이 아니었을까.


어느 때에나 어디에나 시대를 온몸으로 껴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역사의 흐름이라는 열차 머리에 앞장서 타는 사람도 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그 중 하나였다.


필생의 역작 ‘봄의 제전’에 앞서 이미 그는 ‘페트루슈카’에서 시간을 관통했다. 꼭두각시 인형 ’페트루슈카’는 죽어서도 “이는 그냥 인형일 뿐이지 않느냐”고 외치는 주인의 말에 자기를 버리고 가버리는 사람들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자유는 노예, 무지는 힘’이라던 조지 오웰의 『1984』 속의 사회를 페트루슈카에서는 이미 야릇한 알레고리로 비쳐보이고 있다. 몰인정한 태생적 시스템에서 참을 수 없이 가볍기만한 한 존재의 절규는 오늘날 우리의 폐부를 오히려 더욱 깊이 찌른다. 백년이 지난 이 작품은 지금도 ‘모던’하기가 이를 데 없다.


이 ‘페트루슈카’가 쓰이고 있던 1910년은 우리 모든 한국인이 기억하는 해다. 한일병합의 해. 경성에서 베토벤과 브람스가 점점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던 바로 그 때, 공교롭게도 그즈음이었으리라. 스트라빈스키와 라벨을 내 민족의 지난 반만년 역사와 함께했던 음악보다도 더 가까이 느끼는 내 뿌리의 시작점이. ‘모던 타임즈’는 그렇게, 내가 온 곳에 대한 기록이다.


손열음피아니스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