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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쉬쉬하는 리콜 정보…내 물건이 대상인지 알아야 받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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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정부가 제품결함 보상(이하 리콜) 제도 강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22일 산업부 국가기술표준원은 리콜 이행을 위한 점검팀을 발족했다. 리콜 이행 미준수 기업에 대한 법 집행과 리콜 제품 유통 감시를 강화한다는 취지다.

고의로 이행하지 않는 기업에 리콜명령을 이행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과징금을 부과하는 제도 신설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이 같은 정부의 감시 강화와 적극적인 법 집행, 기업의 자진 리콜 증가, 소비자의 안전에 대한 관심 증대로 리콜 건수는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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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가 집계한 2014년 리콜 건수는 1754 건. 168 건에 불과했던 10년 전에 비해 10배 넘게 증가했다. 제품에 하자가 있어도 쉬쉬하던 관행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측면에서 정책이 효과를 발휘해 소비자 권익이 향상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소비자가 실제로 리콜을 받고 있는가다. 현재 대다수 소비자는 자신이 사용하는 제품이 리콜 대상인지도 모른 채 넘어간다. 리콜 정보가 정작 소비자에게는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이 리콜 대상인데도 조치를 받지 않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그 이유를 물었다. 가장 많은 29.5%가 ‘리콜 정보를 늦게 알아서’를 꼽았다.

그나마 최근 3년 간 본인이 리콜 대상임을 알고 있던 소비자가 조사 대상이어서 이 정도다.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소비자가 리콜 정보를 알지 못해 조치를 받지 못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리콜 정보는 불특정 다수 대상으로 제공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보 노출 방식이 중요하다. 미국 소비재위원회(CPSC)의 경우 소비자의 리콜 정보 노출에 주목해 소비자 안전정보 수신 체감 횟수를 산출해 이를 업무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리콜 정보가 대부분 일간지나 행정기관 홈페이지, 자사 홈페이지 등 1~2개의 매체를 통해서만 소비자에게 알리는 게 고작이다.

 전달하는 내용도 미흡하다. 리콜 제품이 왜, 얼마나 위험한지, 또 어떻게 리콜을 받아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앞의 조사에서도 리콜 조치를 받지 않은 다른 이유로 ‘리콜 과정이 복잡해서(18.1%)와 ‘리콜을 어떻게 받는지 몰라서(17.4%)’가 꼽혔다.

반면 호주의 공식 리콜 포털인 ‘recalls.gov.au’은 ‘제품의 결함이 무엇인지’ ‘제품의 위해가 무엇인지’ ‘소비자가 리콜 조치를 받기 위해 할 행동’이란 항목을 따로 마련해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어려운 화학 용어만 잔뜩 써 있는 국내 리콜 정보와 달리 일상의 용어로 풀어 소비자가 이해하기도 쉽다.

 리콜제도 본연의 목적은 기업으로 하여금 ‘우리 제품 문제 있어요’라고 자백시키는 게 아니다. 결함이 있는 제품을 실제로 신속하게 회수·제거해 소비자 피해를 줄이는 게 목적이다. 리콜 건수를 늘려봤자 정작 소비자가 리콜을 받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다는 얘기다.

실적처럼 리콜 건수를 올려 ‘정책 효과’라고 선전하기 전에 리콜 정보의 내용과 전달 방식을 정비하는 게 진짜 소비자를 위한 일이다.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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