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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찌라시” “자작극” “음모의 곰팡이”…살생부 논란 키운 중진들 가벼운 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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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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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회의실 백보드에 걸린 국민 쓴소리.

새누리당이 며칠간 ‘살생부’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현역 의원 40여 명이 올랐다는 살생부 논란을 키우는 데는 이런 단어들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새누리 간판들 쏟아낸 자극 발언
“생각 좀 하고 말을” 백보드와 대비

 ‘찌라시(사설 정보지)’ ‘자작극’ ‘음모정치’ ‘곰팡이’….

 지난달 29일 새누리당은 살생부의 진상을 규명한다며 최고위원회만 오전·오후 세 차례 열었다.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인해 마비된 국회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라고 소집 명분을 단 의원총회에서도 국회 대책은 뒷전이고 살생부 논란이 우선이었다.

 살생부 논란은 정두언 의원이 “김무성 대표가 ‘친박 핵심으로부터 현역 40여 명의 물갈이 요구 명단을 받았는데 당신 이름도 들어 있다’는 말을 내게 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이날 정 의원은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본인은(김 대표) 나에게 찌라시 이야기를 했다는 건데 찌라시 이야기를 왜 심각하게, 결연하게 한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정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찌라시’란 말을 먼저 꺼낸 건 김 대표였다.

 그래서인지 최고위원들도 공개적으로 ‘찌라시’를 입에 올렸다. 김을동 최고위원은 최고위 직후 “그야말로 (살생부는) 유언비어, 찌라시 수준 아니냐”며 “‘아,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묵살해 버리면 되지 이걸 가지고 떠드는 것 자체가 정말 못마땅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최고위원은 스스로도 부끄러운 듯 이런 말을 덧붙였다. “찌라시가 일본말이니 가급적 쓰지 않아야 하는데….”

 친박계 핵심 최경환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당 대표라는 사람이 자작극을 만들어 청와대와 우리(친박계)를 부도덕한 사람들인 양 만들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달 28일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이건 마치 ‘3김 시대’ 음모정치의 곰팡이 냄새가 많이 난다”며 "공정한 공천을 해야 되는 사람이 찌라시 딜리버리(전달자), 찌라시 작가 비슷한 식으로 의혹을 받는 것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다”고 했다.

 김 대표가 있지도 않은 살생부를 입에 올려 친박계에 타격을 준 뒤 발을 빼려 한다는 의혹을 조사하자는 주장이었다. 이에 비박계 의원은 “아무리 계파 갈등이 첨예하다 해도 같은 당 사람, 더구나 당 대표에게 할 수 있는 말이냐”고 발끈했다.

 이 위원장의 발언은 정계 원로들의 반발도 샀다. 지난달 29일 상도동계의 김봉조 전 의원과 동교동계 권노갑 전 의원은 “이 위원장은 3김 시대를 마치 음모의 시대인 것처럼 매도했다”며 “독재정권의 폭거에 항거하며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근대화를 완성한 우리 상도·동교 민주동지 일동은 이러한 폭언을 강력 규탄한다”고 했다.

 찌라시·음모 같은 자극적인 단어들은 살생부에 잘 버무려져 실체 없는 파문을 크게 확산시켰다. 이런 자극적인 단어를 쏟아 낸 ‘가벼운 입’들은 하나같이 새누리당의 간판 정치인이다. 새누리당 회의실 백보드에 걸린 국민 쓴소리 중 하나는 ‘생각 좀 하고 말하세요’다.

1일로 다소 소강상태로 접어든 살생부 논란이 단막극으로 종영될지, 연속극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새누리당의 ‘가벼운 입’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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