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걸 '결자해지' 필리버스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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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가 마지막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주자로 나서 최장 국회연설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는 12시간31분간 연설해 11시간39분이던 같은 당 정청래 의원의 기록을 넘어섰다.

이 원내대표는 테러방지법안에 반대해 필리버스터를 제안한 당사자다. 그런 이 원내대표가 2일 오전 7시1분 본회의장에 39번째 주자로 섰다.

필리버스터 중단을 선언했다 당내 강경파 의원들의 비판을 받았던 이 원내대표는 “의원들의 열정과 국민의 열망을 제 판단으로 날려버렸다. 죽을 죄를 지었다”는 말로 발언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필리버스터를 진행해 온 38명 의원의 이름과 발언 내용을 일일이 거론하며 눈물을 흘렸다.

오전 10시로 예정됐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그의 ‘시간 끌기’가 계속되면서 일정이 계속 뒤로 밀렸다. 의원들은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표결에 대비하며 국회 근처에 계속 대기했다.

이 원내대표는 오후 1시20분쯤 “무도한 파견법을 직권상정 했다고 하더라도 필리버스터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당장 하루하루 선거법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면서 총선 연기 책임론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푸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원내대표는 “저희가 선거를 연기시킨 주범입니까. 자유롭게 살고 싶은 국민들에게 무도한 국정원의 사슬 속에서 살지 않게 하는 것이 저희의 생각”이라고 했다.

다만 이 원내대표는 “제가 갑작스럽게 필리버스터 중단을 선언해 상처받은 국민들이 용서할 때까지 (단상에서) 버티겠다”며 시간을 계속 끌었다.

이 원내대표의 측근은 “이 원내대표가 주변에 ‘쓰러질 때까지 하겠다’고 말하고 연단에 올랐다”고 전했다. 그는 “12시간 분량의 원고를 준비했는데 원고에 없는 말을 하면서 더 길어졌다”고 했다. 그는 오후 7시32분이 돼서야 필리버스터를 한 야당 의원들을 죽 열거한 뒤 “여러분이 국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신 필리버스터의 영웅이시다”며 발언을 마쳤다.

야당 의원들은 이 원내대표가 단상에서 내려오자 복도에 도열해 박수를 쳤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무제한 토론 중단”을 선언했다. 지난달 23일 오후 7시6분 시작해 192시간26분에 걸친 세계 최장 필리버스터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 원내대표는 지난달 29일 “1일 기자회견에서 필리버스터 중단 결정을 발표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뒤집고 이틀 가까이 더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이 바람에 국회는 계속 멈춰 있어야 했다.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의원총회에서 “야당 원내대표가 이 엄중한 시기에 빨리 선거법 등을 처리하지 않고 본회의 단상에서 저렇게 필리버스터 행위를 계속하는 데 대해 통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이 원내대표가) 쓰러질 때까지 한다는 황당한 얘기들이 들리는데, 참 징그럽다, 징그러워”라고도 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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