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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훈 “나도 흙수저…그런 것 따지지 말고 당당하게 삽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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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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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장훈(49)씨를 수식하는 말은 다양하다. 오랫동안 언더그라운드 가수 생활을 거친 뒤 1990년대 말 발표한 록발라드 ‘나와 같다면’을 통해 대중에게 개성 강한 ‘보컬리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젊어진 수요일] 신문콘서트 시즌2 ‘2030 고민을 말해봐’

TV 예능프로그램에 모습을 드러내는 한편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것을 베푸는 ‘기부천사’로도 불렸다. ‘독도 지킴이’를 자처하며 세계를 상대로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는 한편 화려한 무대장치와 볼거리 가득한 수준 높은 공연을 통해 ‘공연의 제왕’으로도 불렸다.

세월호 참사 땐 유족들과 단식하고 집회에 참가하는 등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며 연예계의 대표적인 ‘소셜테이너(socialtainer)’로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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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장훈씨가 지난달 29일 열린 중앙일보 신문콘서트 시즌2에서 열창하고 있다. [사진 김상선 기자]

그런 그가 29일 오후 서울 홍익대 앞 롤링홀에서 열린 올해 첫 ‘중앙일보 신문콘서트 시즌2’에서 ‘청춘 카운슬러’를 자처하고 나섰다. 20, 30대 관객 200여 명이 객석을 가득 채운 이날 콘서트의 주제는 ‘2030 고민을 말해봐’였다.

 “연예 이슈가 아닌 정치·사회 분야를 주제로 한 무대라 더 설렙니다. 청춘들과 가슴속 깊은 곳의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그가 첫 곡으로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열창하자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세대의 아픔과 고민을 아우를 수 있는 노래라 첫 곡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 김장훈, 그리고 청춘

 “김장훈의 청춘은 어땠나”는 물음에 그는 “방황의 연속이었다”고 답했다. “바닥까지 가봤고, 세상을 등질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끝내 꿈을 놓진 않았습니다.” 김씨는 “청춘 관객들의 마음에 한 줄기 울림이라도 줄 수 있다면 오늘 시간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청춘이 많다.

 “사실 젊은 날을 돌아보면 나 역시 할 말이 없다. 늘 냉소적이고 불만이 가득했다. ‘건드리면 터진다’는 식이었다. 성공에도 큰 미련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친구, 형들과 어울려 부르던 노래는 일종의 해방구였다. 마음껏 노래 부르고 소리를 지르고 나면 후련했다. 어린 시절 내 안에 쌓여 있던 아픔과 질곡이 해소되는 느낌이랄까. 데뷔고 뭐고 노래 자체가 내 꿈이었다. 하루 10시간 넘게 한 달 연속으로 노래를 부른 적도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선 술 먹고 과방 소파에 누워 있는 일이 많아 방정환(‘소파·小波’는 방정환의 호)이라고 불렸다.

 요즘엔 조금 달라졌다. ‘돌출되지만 치밀하게 살자’랄까. 행동하기 전에 수십 번씩 고민하고 감당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내 행동에 대해 나쁜 반응이나 비판적인 반응이 나오더라도 상처 받지 않거나 후회하지 않는 내공이 생겼다.”

 -요즘 2030에 비하면 빠른 성공을 이뤘는데.

 “사실 나는 성공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갑자기 들어오는 돈이나 명성이 내 것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한때 부자 소리 듣던 우리 집은 한순간에 폭삭 망했다. 어머니가 교회에서 쌀을 얻어먹고 8만원짜리 월세집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내 노래가 알려지면서 수억원대 음반 계약을 맺었다. 돈이 내 삶이 행복하고 아니고를 가르는 기준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돈은 행복의 기준이라기보다 최악의 불행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청춘들이 왜 고민을 한다고 생각하나.

 “우리나라엔 뭐든지 숫자로 가르는 문화가 있다. ‘반에서 몇 등 하니’ ‘몇 번째 대학 갔니’ ‘몇 살에 결혼 할거니’. 잘 모르는 사람들은 물론 가족들까지도 숫자로 우리를 옭아맨다. 나는 인간의 행복을 이런 숫자들로 재단하는 걸 혐오한다. 각자의 개성과 주체성을 존중해주고 저마다 기준점이 다른 행복을 존중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날마다 포기할 게 하나둘 늘어가는 청춘들의 삶도 나아지지 않을까.”

 -청춘들에게 김장훈의 미래를 살짝 들려달라.

 “나도 내 미래가 궁금하다. 10년, 20년 뒤에도 노래 한 소절에 설렌다면 노래를 할 거다. 아니면 한국을 떠나거나 가진 것을 다 털어서 나눔을 하거나. 어쩌면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를 닮은 몽상가처럼 살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하루를 산다’는 말이 ‘하루를 죽는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열심히 산다. 인생은 허무하고 인간은 나약하다는 걸 안다. 나 역시 무언가 바꿔보고 싶어서 달려들었다가 무기력하게 자빠진 적이 많다. 그렇게 허무한 인생이라면, 더욱 가식 없이 솔직하게 내일 죽더라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N포세대와 수저계급론에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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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훈씨가 패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부 행사에선 ‘N포세대, 수저계급론, 청춘과 정치’를 주제로 김장훈씨와 중앙일보의 30대 사회·정치부·디지털팀 기자들의 대담이 이어졌다. 대담엔 디지털팀 정선언, 사회부 채윤경, 정치부 정종문 기자가 참여했다.

 -연애·결혼·출산 등을 포기하는 ‘N포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청춘들에게 출산해라, 결혼해라 말을 꺼내기조차 미안하다. ‘헬조선’이란 자조가 단지 우스갯소리가 아니지 않나. 돌이켜 보면 예전에도 청년들은 언제나 고달팠고 힘들었다. 지금 이런 문제가 부각되는 건 현실 문제 외에도 정부, 정치권과 정책에 대한 청년들의 불신, 짜증, 울화가 최대치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말하고 싶다. 포기를 하느니 분노하라고, 투표하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포기하면 바뀌는 게 없다. 길게 봐야 하지 않을까. 포기하는 걸 당연시하고 그러려니 하는 사회가 가장 희망이 없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젊은 층 사이에선 ‘수저계급론’이란 자조도 나온다.

 “나는 모든 수저를 다 겪어 봤다. 태어났을 땐 금수저였다가 이내 흙수저가 됐고 은수저와 금수저를 넘나들었다. 나는 청년들에게 수저 색을 따지지 말고 ‘주체적인 삶을 살자’고 얘기하고 싶다. 나에 대한 자신감과 자의식이 강하면 돈이 없고 대접을 못 받아도 당당히 살 수 있다. 나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잘리고 돈 한푼 없이 길바닥에서 사는 삶을 살았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확고한 꿈이 있어서였다. 최저임금을 받고 살아도, 낡은 경차를 타고 다녀도 비굴하거나 구차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나에 대한 사랑, 확신만 있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 청춘에게 물었다 ‘고민이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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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리포트팀과 알바천국은 지난달 22~26일 5일간 20, 30대 남녀 1024명을 대상으로 ‘청춘의 고민’을 주제로 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의 46.1%가 현재 가장 큰 고민으로 ‘취업 문제’를 꼽았다. ‘생활비와 학비 부족’(34.8%), ‘결혼 및 연애’(10.0%), ‘인간관계’(6.6%)가 뒤를 이었다.

 고민을 해소하는 방법으로는 ‘취미생활 등에 몰두한다’(28.5%)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친구와 수다를 떤다’(25.8%), ‘문제 원인을 찾는다’(21.8), ‘펑펑 울거나 자면서 잊어버린다’(17.8%)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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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의 고민을 잘 해결해줄 것 같은 정치인으로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34.6%)이 꼽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13.2%),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11.9%), 박원순 서울시장(6.9%), 오세훈 전 서울시장(3.4%)이 뒤를 이었다. 기대하는 정치인이 없다거나 기타 정치인을 꼽은 응답자의 비율은 30%였다.

글=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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