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아마추어들의 달콤한 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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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 8강전 1국> ○·탕웨이싱 9단 ●·박정환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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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보(93~101)= 고행의 가시밭길. 우변 93을 힐끗, 쳐다본 탕웨이싱의 손이 느릿느릿 중앙 94로 내려앉는다. 얄미우리만큼 침착하다. 박영훈 9단에게 물었다. 탕웨이싱의 기풍이 어떤가. 머리를 긁으며 싱긋, 웃는다. 잘 알면서 뭘 그래요? 그런 표정인데 순박한 이 청년은 어쨌든 물었으니 답은 건네준다.

 “실리에 민감하고 굉장히 끈질긴 바둑이에요. 냉철해서 불리할 때도 쉽게 안 무너지고 상대의 의표를 잘 찌릅니다.”

 일류 승부사로서의 재능은 거의 다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묘하게 행마를 비틀어 한발씩 늦추거나 당기는 완급조절은 엄지손가락을 꼽아줄 만하다. 지금 이 대국, 박정환의 고전도 바로 그렇게 시작되지 않았던가.

 흑은 손쓸 곳이 많다. 당장 A의 곳도 잇고 싶은데 그보다는 하변 정비가 더 급하다고 봤는지 95로 단속한다. 일종의 응수타진이기도 한데 탕웨이싱은 관심 없다는 듯 손을 돌려 96으로 뛰어나간다. 흑의 처지에서 볼 때 여기도 뼈저린 급소다. 97로 기대어 두고 찝어간 99는 궁여지책. 문자 그대로 궁색하기 짝이 없는 연결수단이다.

뒤이은 101도 희생이 불가피한 수법. 수순은 길지만 ‘참고도’처럼 걸려주기만 하면 뭔가 풀릴 것도 같은데 그거야 아마추어들의 달콤한 상상이고….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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