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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많았던 제주 민군복합항, 세계 최고의 관광미항 만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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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던 제주 강정마을의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 26일 공사를 마치고 문을 열었다. 제주 해군기지의 필요성이 제기된 게 1993년 12월이니 23년만의 결실이다. 2007년부터 입지 선정이 시작되고, 2010년 본격 건설이 시작돼 2015년까지 총사업비 1조765억원이 투입됐다.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시샘하듯 뭉게구름들이 바다에 닿을 듯 낮게 깔렸다. 바람이 제법 있는데도 방파제 품에 안긴 항구는 평온하다. 해군 구축함 1척과 해경 경비함 2척, 조금 떨어진 곳에 잠수함 1척이 옆구리를 뭍에 붙이고 정박해있다. 26일 준공식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던 18일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 풍경이다.

◇총 길이 2.5㎞ 방파제엔 올레길도 설치···반대 시위로 적막

잠수함 3척을 포함, 이지스함을 비롯한 군함 20여척과 15만t급 초대형 크루즈 2척이 동시에 정박할 수 있고, 해군기지 옆에 국제규격 수영장을 갖춘 복합문화센터와 종합운동장까지 갖췄다.

이 모든 시설이 주민들에게 개방된다. 그럼에도 그것이 싫다고 반대하는 시위가 워낙 격렬했었기에 공사차량들의 부산한 이동조차 오히려 적막한 느낌이다. 4500t 규모의 구축함 문무대왕함과 1000t급의 해경 경비함이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그 배들이 정박한 부두 500m쯤 뒤로 펼쳐진 방파제가 워낙 시선을 끄는 까닭이다.

총 길이가 2.5㎞에 달하는 ‘ㄱ’자형 방파제의 안쪽은 15만t급 이상의 초대형 크루즈 2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부두로 이용된다.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하는 기둥들이 줄지어 선 회랑 형태로 돼있다. 크루즈에서 내린 관광객들을 버스에 실어 크루즈 터미널로 실어 나르게 된다. 회랑의 기둥 안쪽에는 무빙워크가 설치돼 걸어서도 이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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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민군복합항에 정박 중인 문무대왕함 뒤로 방파제가 보인다. 기둥으로 이어진 회랑 윗편엔 올레길이 조성됐다.(위) 아래는 그 올레길에서 항구쪽으로 바라본 전경이다.

거듭된 공사 중단으로 크루즈 터미널이 내년 7월에야 완공되게 돼 항구에 기착하는 크루즈를 보려면 좀더 기다려야 하지만 이 방파제는 그때를 기다릴 것도 없이 제주도가 자랑하게 될 또 하나의 명물이 될 게 분명하다. 기둥 회랑 위로 만들어지는 2층과 3층의 이중 산책로를 따라 일반인들의 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이 제주 올레길과 이어지는 30m 높이의 바닷길을 따라 걸으며 푸른 바다를 감상하는 건 물론 초대형 크루즈와 해군기지에 기항하는 각종 외국 군함들을 가까이서 구경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세계의 유명 항구 대부분 민군복합항···관광명소로 경제 효과도 높아
미국의 하와이와 샌디에이고, 호주의 시드니, 프랑스 툴롱, 영국 포츠머스, 이탈리아 나폴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항구들이 대규모 군항이 들어선 민군복합항인 이유가 다르지 않다. 프랑스 툴롱은 프랑스 제1 해군기지가 있는 곳이지만, 프랑스 대통령 별장까지 있는 지중해 연안의 유럽 최고 휴양지 중 하나다. 역사적인 해군기지인 영국의 포츠머스 역시 유럽대륙을 잇는 여객선이 입출항하는 전형적인 민군복합항이다.

관광지로 유명한 이들 항구가 굳이 군항을 겸하고 있는 건, 그 지역이 대양 진출과 외부세력의 침입을 막을 전략적인 요충인 까닭이기도 하지만 해군기지의 존재 자체가 도시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미 태평양함대사령부가 있는 하와이다. 하와이에서 국방예산은 관광수입 다음으로 중요한 경제소득원이다. 하와이 경제의 3분의1을 지탱하는 게 국방 비용이다. 공장이 없는 하와이의 진주만 해군정비창은 하와이에서 가장 큰 산업인력 고용창출을 하고 있다. 해군기지에서 지역주민 1만4000명을 고용하고 있고 정비창과 관련 조선업체에서 4500명이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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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에 위치한 미 대평양사령부 내 군항의 모슴.

이 같은 효과에 하와이는 항공모함의 모항을 유치하기 위해 샌디에이고와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유치 경쟁에서 승리한 샌디에이고 역시 해군기지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미 3함대사령부가 샌디에이고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은 연간 18조3000억원으로 지역경제의 14%를 차지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대단해 샌디에이고에서 두 번째로 큰 고용집단이 군이다. 14만8000여명을 직접 고용하고 있으며 간접적으로 14만2000여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퇴역한 미드웨이 항공모함을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유람선이 군항 수역을 운항하며 항공모함 등 크고 작은 군함들을 가까이서 관람할 수 있는 관광상품도 지역경제에 톡톡히 이바지하고 있다.

호주 시드니는 해군기지가 인근 호텔과 마리나, 오페라 하우스 등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스카이라인을 제공해 항구 전체를 세계적 미항(美港)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특히 세계적으로 드물게 남태평양에 위치한 군항인 덕분에 외국 전함들이 많이 방문해 그 자체로도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지형에 위치까지 갖춘 제주 강정, 해군기지론 최적지
제주 민군복합항 역시 다르지 않다. 민군복합항이 들어선 강정마을은 예로부터 해군기지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1439년 세종대왕이 강정에 ‘동해방호소’라는 왜적방어용 군사시설을 설치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이다. 당시에야 대양해군 개념은 생각하지도 못했겠지만 방어 요충으로서의 지형적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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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는 그 중요성이 더 커졌다. 우리나라는 무역에 절대의존하고 있으며 전체 교역 물동량의 99.7%가 해상교통로를 이용하고 그 중 대부분이 제주해역을 통과하고 있다. 국가의 생명선과도 같은 남방해역 해상교통로를 보호하는데 한반도 해역의 지리적 중앙에 위치한 현재의 자리가 해군기지로서 최적지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해양수역을 둘러싼 국제적 갈등이 갈수록 첨예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천연가스와 원유 등 해양자원의 보고인 제주 남방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2007년 실시된 후보지 주민대상 여론조사에서 다른 후보지들에 비해 찬성표가 가장 많이 나왔던(찬성 56% 반대 34%) 이유도 다른 게 아니었을 터다.

경제적 파급효과 또한 크다. 우선 해군기지 건설 관련 총 예산 8000억원 중 3100억원 이상이 지역업체에 배정됐다. 또 해군기지에 주둔할 군장병과 그 가족 등 약 7500여명의 인구가 늘어나게 되며, 그로 인한 지역 내 소비액이 연간 510억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밖에 현재 제주항의 크루즈 부두 규모가 협소해 기항이 불가능한 15만t 이상 대형 크루즈의 접안이 가능해져 연간 160만명의 크루즈 승객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아시아 최고의 크루즈 거점항인 중국 상하이에서 20시간 이내에 도착 가능한 유일한 항구라는 지정학적 장점을 활용한다면 한·중·일 크루즈 항로의 중심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그 경우 2025년까지 100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 크루즈 관광객 수용이 가능해진다.


◇사회적 비용 치르며 건설한 만큼 최고의 미항으로 거듭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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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민군복합항은 계획에서 탄생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비용을 치렀다. 그 중에서도 찬반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완전 치유되는데 앞으로도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 비용의 대가를 얻어내는 것은 제주 민군복합항의 완벽한 성공 밖에 없다. 제주 민군복합항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미항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게 앞으로 남은 과제다.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만족도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영종도 공항의 성공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많은 세계인들이 제주 민군복합항의 탄생을 관심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갈등은 지난 일이다. 그냥 덮어두기엔 너무도 크고 아팠지만 성장통으로 생각하고 이제 군과 지역주민, 제주도민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이 한마음이 돼 세계 최고의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을 향해 힘차게 닻을 올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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