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kg 넘는게 평생의 소원이던 어머니셨는데, 그 사건만 아니었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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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무게 50kg을 넘어 보는 게 소원이던 어머니셨는데, 그 일만 아니었어도…”

2002년 영남제분 청부 살해 사건의 피해자인 여대생의 오빠 하모(40)씨는 지난 20일 경기도 하남시 집에서 홀로 숨진 자신의 어머니 설모(64ㆍ여)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설씨는 지난 20일 자신의 집 안방 침대에서 숨진 채 아들 하씨에 의해 발견됐다. 설씨는 몸무게가 38kg에 불과한 상태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위에서 내용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영양실조가 사망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부검 소견을 냈다.

하씨는 23일 본지 기자와 통화에서 “여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우리 가정은 파탄이 났다”며 “하지만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어머니도 어느 정도 회복을 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라고 했다.

하씨가 말한 그 일은 2013년 4월에 일어났다. 그해 2월 7일은 하씨의 첫째 아들 돌잔치였다. 설씨는 딸이 죽었다는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손자 보는 재미에 서서히 기력을 회복하는 중이었다. 설씨가 돌잔치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등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하지만 2개월 뒤인 4월 초 그 일이 터지면서 하씨 가족의 즐거움도 사라졌다.

그 일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있어야 할 청부 살해의 주인공 영남제분 회장의 부인 윤모(71)씨가 서울의 모 병원 VIP병동에서 호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여자(윤씨)가 초호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터지면서 어머니는 더 큰 충격에 빠지셨다”며 “그때부터 그나마 드시던 음식마저 안 드셨다”고 말했다.

이후 설씨는 더 야위어 갔다. 하씨는 “어머니께서는 평소에도 잘 안 드셔서 몸무게가 45~46kg에 불과했다. 50kg을 넘겨 보는 게 평생의 꿈이라고 하셨다”며 “당신께서 가장 이루고 싶었던 꿈과는 반대로 먹지도 못하고 38kg의 몸무게로 세상을 떠나신 게 더 속이 상한다”며 끝내 울먹였다.

‘영남제분 청부 살해 사건’은 2002년 영남제분 회장의 아내 윤모씨가 자신의 사위가 설씨의 딸 하모(당시 22세)씨와의 불륜을 의심해 하씨를 청부 살해한 사건이다. 윤씨는 2004년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윤씨는 이후 2007년 건강상의 이유를 내세워 5차례나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아 호화생활을 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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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항소심 재판부는 2014년 10월 허위진단서를 발부해 윤씨가 형 집행정지를 받도록 도운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은 서울 S병원 주치의 박모(55)씨에 대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허위진단서 발급 대가로 받은 1만 달러에 대한 혐의를 무죄로 인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1만 달러를 건넨 혐의로 기소된 윤씨의 남편 영남제분 회장 류모씨도 이 사건과 관계없는 횡령과 배임 혐의만 적용돼 징역 2년이던 원심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됐다. 현재 사건은 아직 대법원의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하남=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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