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잠금 해제 놓고 저커버그 vs. 게이츠 입장 엇갈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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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범의 아이폰 잠금 해제를 둘러싼 애플과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공방을 두고 정보통신(IT) 거물인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엇갈린 입장을 보였다.

저커버그는 22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강연에서 “팀 쿡 애플 CEO와 애플에 상당히 공감한다”고 밝혔다. 또 "(보안 조치를 우회할 수 있는) ‘뒷문(back door)’을 요구하는 것은 보안을 향상시키는 효과적인 길도 아니고 옳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개적인 애플 지지다.

앞서 구글의 순다 피차이 CEO도 애플 진영에 가세했다. 애플 진영은 국가 안보상의 이유라 하더라도 사생활 보호를 훼손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쿡은 전쟁을 준비하는 장수처럼 내부 단속에 나섰다. 그는 직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 정부의 요구를 따를 수 없는 이유를 상세히 설명했다. 쿡은 “(정부의 요구에 따르는 건) 법을 준수하는 수억 명의 데이터 안전과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위험한 선례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게이츠는 FBI 편을 들었다. 그는 이날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잠금해제 명령이 '위험한 선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의 이번 정보 요청은 특별한 경우"라며 "정부는 범죄 중단, 테러 위협 조사 등을 할 수 있는데 이는 정보에 접근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 정부는 애플이 테러범 수사에 비협조적이라는 점을 내세워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법률전문사이트인 ‘로페어’ 기고문에서 “정부가 요청한 것은 마스터키가 아니라 수사 기회를 달라는 것”이라며 "수사 단서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생존자들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법무부는 캘리포니아주 연방지법에 아이폰 잠금해제를 다시 한번 요청하면서 애플의 ‘상업주의’를 부각시켰다. 애플의 요청 거부는 “회사의 사업 모델과 브랜드 마케팅 전략상의 우려 때문”이라는 비판까지 했다.

쿡은 FBI의 수색영장 철회를 요구하면서 여전히 암호화 해제 거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기술·정보·시민·자유 등 분야별 전문가가 참여한 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그는 “'국가 안보와 법 집행'이라는 가치와 '프라이버시 보호'라는 두 가지 상충되는 가치를 놓고 토론할 필요가 있다”며 “애플은 이 같은 노력에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내 여론의 압박을 감지한 애플이 위원회 구성으로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하려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애플 아이폰의 잠금 해제 문제를 놓고 여론은 찬성과 반대로 양분돼 있지만 일단 애플이 법원의 명령대로 잠금장치 해제에 협조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우세했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의 18~23일 조사에 따르면 ‘잠금장치 해제에 찬성’이 51%, ‘해제 반대’가 38%였다. 연령이 높을수록 애플의 결정에 부정적이었다. 18~29세 응답자는 47%, 65세 이상에서는 54%가 애플의 휴대전화 잠금 해제를 촉구했다.

많은 보안전문가들은 잠금해제 소프트웨어를 한 번만 사용한다는 수사당국의 요구가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일단 만들어지면 복제될 수 있는 것이 소프트웨어의 본질이라는 설명이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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