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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형의 음악이 있는 아침] 1965년의 마르타 아르헤리치

중앙일보

입력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1941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입니다. 아버지의 조상은 18세기부터 거주하던 카탈루냐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제정러시아에서 이주한 유대인의 후손이었죠.

아르헤리치는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습니다. 다섯 살 때는 빈첸초 스카라무차에게 배웠습니다. 스승은 서정성과 느낌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8세 때 데뷔 콘서트를 가졌습니다.

1955년, 아르헤리치의 연주를 접한 후안 페론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그녀에게 뛰어난 음악 교육을 시키기 위해 외교관이었던 그녀의 아버지를 빈에 부임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가족과 함께 오스트리아로 이주한 아르헤리치는 빈과 잘츠부르크에서 2년 동안 프리드리히 굴다에게 배웠습니다. 굴다는 외르크 데무스, 파울 바두라 스코다와 더불어 ‘빈 3총사’로 불린 명인이었죠.

이후 아르헤리치는 제네바에서 니키타 마갈로프, 디누 리파티의 부인인 마들렌 리파티, 이탈리아에서 아르투르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브뤼셀에서 스테판 아스케나제 등 명교수들에게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1957년, 아르헤리치는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와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모두 우승하면서 대표적인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았습니다.

콩쿠르 두 개를 잇달아 우승하면 자신감도 생겼을 텐데, 그녀는 만족하지 않고 정진을 거듭했습니다.

1959년에는 프리드리히 굴다의 스승이기도 한 브루노 자이들호퍼의 마스터클래스를 여러 번 수강했죠.

1960년, 아르헤리치는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데뷔 음반을 녹음했습니다. 쇼팽의 스케르초 3번 Op.39와 바르카롤 Op.60, 브람스의 랩소디,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프로코피예프 토카타 Op.11과 라벨 ‘물의 희롱’이 담겼습니다.

1965년 아르헤리치는 바르샤바에서 열린 쇼팽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최우수 마주르카 연주자에게 수여되는 폴란드 방송국 마주르카상도 아울러 수상했습니다.

당시 스케르초 3번을 연주한 아르헤리치의 쇼팽 콩쿠르 2라운드 영상을 보시죠.

쇼팽 콩쿠르 심사위원들이 왜 ‘활화산 같은 연주’라고 극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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