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서슬 푸른 예도와 묵직한 둔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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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본선 8강전 1국> ○·탕웨이싱 9단 ●·박정환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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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보(43~57)= 43으로 맞끊어 피할 수 없는 기세의 충돌. 44, 45로 ‘마이웨이!’를 외치면 별 수 없는 육박전인데 탕웨이싱은 46으로 내려선다.

침착한(?) 급소다. ‘침착한 급소’란 말이 성립되나? 급한 곳을 침착하게 두다니. 언뜻 모순 같지만 어쩐지 한가해 보이는 46은 그런 곳이다.

 이 장면으로만 박정환과 탕웨이싱을 비교하면 서슬 푸른 예도(銳刀)와 묵직한 둔도(鈍刀)를 보는 것 같다. 43부터 49까지, 박정환의 손을 떠난 수들은 반짝반짝 빛을 토하며 백을 위협하는데 44부터 48까지, 탕웨이싱의 수들은 평범하다 못해 둔중하게 느릿느릿 움직인다.

주목할 것은 박정환의 날카로운 수들이 둔해 보이는 탕웨이싱의 수들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50, 52는 정수. ‘참고도’ 백 1, 3의 반격은 무리. 흑 4, 6으로 곤경에 처한다. 49, 51은 좌하 일대 백의 영토를 납작하게 눌러두고 53을 선수하는 게 목적인데 가만히 1선으로 젖혀둔 54가 안성맞춤.

후수 처방이긴 하지만 49의 희생양을 삼켰고 차후 하변 흑의 집을 깎는 맛을 남겨뒀으니 한 수의 가치는 충분하다. 55를 선수하고 57로 뛰어나간 장면에서 ‘전체적으로 흑이 엷다’는 게 검토진의 중론.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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