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체육특기생도 논문·면접 시험…깐깐한 일본 대학 입시

중앙일보

입력

 
1999년과 2002년 일본프로야구 다승왕에 올랐던 투수 우에하라 고지(41). 현재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스삭스에서 활약 중인 그는 2013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선 최우수선수(MVP)에 뽑히기도 했다. 그런데 최고의 투수 우에하라도 1994년 고교 졸업 후 일본 대학 입시에서 낙방해 재수를 해야 했다. 3년 동안 야구에 전념하느라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던 탓이다. 오사카 체육대학에 응시했다 낙방한 그는 1년 동안 재수학원에서 기초를 닦았다. 우에하라는 오전 9시~오후 5시까지 열심히 공부한 끝에 이듬해에야 오사카 체대에 합격했다. 우에하라는 "재수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다. 그 시절을 잘 넘긴 덕분에 야구를 더 잘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 프로야구 다승왕 우에하라도 재수…입학 뒤에는 학업 병행 철저 관리

일본은 운동 실력이 뛰어나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도 성적이 나쁘면 대학에 입학할 수 없다. 한국의 체육특기자 전형에 해당하는 해당하는 일본의 추천입시 전형은 실기시험 비중보다 고교 내신 성적과 소논문·면접 등의 비중이 더 크다.

노벨 물리학·화학상 수상자와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다수 배출한 일본 명문 국립대 쓰쿠바 대학은 체육전문학군 입학 정원 240명 중 추천입시로 84명을 선발한다. 축구·농구·야구 등 해당 종목 전국대회에서 입상을 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학생일지라도 논술과 면접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쓰쿠바 대학 이찬우(39) 교수는 "최근 소논문 주제는 '2020 도쿄 올림픽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에 관한 것이었다. 400자 이내로 서술해야 하는데 짧은 글 안에 생각을 함축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쓰쿠바 대학 코이도 마사키(38) 축구부 감독은 "축구를 잘하는 학생을 뽑고 싶어도 공부를 못해 스카우트에 실패한 사례도 많았다"고 말했다.

일단 대학에 합격하더라도 끝이 아니다. 운동선수들도 반드시 수업에 참가해야 한다. 쓰쿠바 대학은 체육학부에만 전임교수가 120명이나 된다. 지난 15일 오후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대 축구장에는 운동을 하는 학생이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어둠이 짙게 깔린 오후 5시쯤에야 운동장에 라이트가 켜지더니 유니폼을 입은 학생 30여명이 우르르 뛰어나왔다. 이 학교 기노우치 사토시 홍보팀장은 "쓰쿠바 대학 학생들은 모두 오후 4시30분까지 수업을 들어야 한다. 운동부 학생들의 훈련은 수업 시간 이후에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평일에는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훈련하고 토요일에는 실전경기를 치른다. 국가대표에 선발되더라도 강의를 빠질 수는 없다.

일본 명문 사립대 와세다 대학도 체육 특기자들에게 높은 학업수행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009년 와세다대 스포츠과학부를 졸업한 무라이 유키(30)씨는 "추천입시로 들어온 학생들은 일반 학생에 비해 학업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졸업을 늦게 하거나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2012 런던 올림픽 탁구 은메달리스트 후쿠하라 아이(28)도 2007년 와세다대 스포츠과학부에 입학했지만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기 어려워 결국 2010년 자퇴를 선택했다.

지도자가 학부모로부터 돈을 받고 입학을 시켜주는 체육특기자 입시비리 사건도 일본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국립 쓰쿠바 대학의 경우 운동부 지도자들은 전부 전임교수다. 8000만원~1억원의 연봉이 지급되고 연금과 의료보험 혜택이 있다. 65세 정년까지 보장되는 정규직이다. 코이도 마사키 감독은 "학교는 단기간의 성적보다 10~20년동안 축구부를 어떻게 발전시킬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성과 압박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입시 부정을 저지르는 감독은 없다"고 말했다. 인맥을 통한 입학도 어렵다. 이찬우 교수는 "코치들이 실기점수를 후하게 줘도 이론과 연구 파트 교수 10여명이 학생의 수상 실적과 필기 성적 등을 교차 점검한다. 입시 관련 교수 전원이 입을 맞추지 않는 이상 학업성적이 나쁜 학생이 입학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 사립대 지도자들은 대부분 3~5년 계약직이다. 연봉은 국립대 지도자와 비슷하지만 성적이 좋지 않으면 재계약이 어렵다. 그만큼 성적 올리기에 사활을 걸게 되고 실력 좋은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편법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같은 입시비리를 막기 위해 감시 기능을 강화했다. 올림픽 스타를 대거 배출한 일본체육대(사립)에는 운동부 지도자를 관리하는 '스포츠국' 이 따로 있다. 일본체육대 황인관(51) 교수는 "스포츠국에서는 감독이 고교 선수를 만나러 출장을 갈 때 식사비까지 일일이 점검한다"며 "체육지도자들이 금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능력에 걸맞는 적절한 대우를 해주는 한편 감시 기능을 활성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쓰쿠바·도쿄=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