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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하루 2kg’ 티라노사우루스의 폭풍 성장, 타조와 닮았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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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아파트 대신 그 만한 키의 열대우림이 우거지고, 그에 맞먹을 만큼 키 큰 공룡이 나뭇잎을 뜯어 먹는 풍경을 상상해 보세요. 짜릿하지 않나요? 6500만 년 전에 멸종한 공룡만큼 인간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동물도 없을 겁니다.

커버스토리 | 공룡 시대 그려보기

너무도 오래 전에 살았던 생물이라 알려진 것은 많지 않습니다. 화석을 통해 추측을 할 뿐이죠. 그럼에도 사람들은 과학적 상상력으로 화석에 살을 붙여 공룡 시대를 그려냅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때 지구를 주름잡았던 공룡의 삶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2억2800만 년 전, 모든 대륙이 하나로 붙어 거대한 판게아를 이루고 있던 시절 처음 등장한 공룡은 명실상부한 지구의 지배자였습니다. ‘트라이아스기’라 불리는 지질시대였던 당시 지구는 따뜻했어요. 파충류에 속하는 공룡이 활동하기엔 최적의 조건이라 자유롭게 대륙 전체로 퍼져나가 번성했죠. 초기엔 작고 날렵하며 두 다리로 걷는 육식 공룡들이 많았습니다. 가장 오래된 초식 공룡도 이 시기에 나타났죠. 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넓게 분포하며, 효과적인 소화계 덕분에 판게아에 번영했던 다양한 식물들을 잘 섭취할 수 있었어요.

1억8000만~1억3500만 년 전까지의 지질시대인 ‘쥐라기’에 판게아는 서서히 두 개로 갈라져 북쪽의 로렌시아 대륙과 남쪽의 곤드와나 대륙으로 나뉘었습니다. 그러면서 커다란 바다가 대륙 사이에 자리하고, 기후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구가 더 따뜻해지면서 무성한 열대우림으로 채워진 것이죠. 이런 기후는 공룡이 살기에 매우 적합했고, 아파토사우루스와 같은 거대한 공룡의 등장을 도왔습니다. 그러다가 여름과 겨울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시기인 ‘백악기’가 찾아오며 공룡은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륙을 이어주는 연결로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서로 격리돼 각 지역에서 새롭게 진화한 공룡들이 등장했어요. 공룡의 시대에서 종류와 수가 가장 많았던 시기가 바로 백악기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공룡은 약 6500만 년 전 한순간에 모두 사라집니다. 멸종 원인으로 운석 충돌설, 화산 폭발설 등 다양한 설이 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나마 가장 믿을 만한 추론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운석 충돌설입니다. 1980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물리학자인 루이스 알바레즈가 백악기 말 당시의 경계 지층에서 ‘이리듐’이라 불리는 물질이 다른 시기보다 수백 배 많게 발견됐다는 사실을 토대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리듐은 지구엔 소량으로 존재하는데, 소행성의 충돌로 다량의 이리듐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죠. 이를 ‘K-T 대멸종’이라고 합니다.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 충격파와 열로 발생한 수증기가 열을 차단해 지구의 평균 온도가 높아지고, 공중으로 솟구친 먼지가 햇빛을 차단해 추위가 몇 십 년 동안 계속돼 공룡을 멸종시켰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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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500만 년 전 소행성의 충돌로 추정되는 사건이 공룡을 멸종시켰다는 추론이 가장 널리 인정받고 있다. 2 초식 공룡인 브라키오사우루스의 상상도.

뛰어난 폐 기능으로 거대한 덩치 감당

한 시대를 지배한 공룡은 어떻게 거대한 몸집을 가지게 됐을까요. 공룡의 화석을 연구한 과학자들은 폐의 구조가 조류와 같아서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조류의 폐는 인간의 폐보다 훨씬 기능이 뛰어납니다. 폐의 양옆에 작은 관이 하나 더 있어서 숨을 들이킬 때 흡수할 수 있는 산소의 양이 포유류보다 많죠. 이런 폐 기능 덕분에 조류는 산소가 적은 높은 고도의 하늘에서 비행할 수 있어요. 공룡은 조류처럼 높은 산소 흡수율을 보였고, 그만큼 덩치가 커도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 공급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최근 새로 나왔습니다. 지난달 22일 원병묵 성균관대 나노과학기술학과 교수는 공룡 중 최상위 포식자로 알려진 티라노사우루스 과의 생존 전략과 노화 과정이 조류와 비슷하다고 발표했습니다. 티라노사우루스 과의 공룡들은 생후 2년간 유아기, 18년까지 청소년기를 보냅니다. 몸집이 작은 유아기 때는 다른 포식자에게 잡혀 죽지만, 청소년기 동안 하루에 2㎏씩 폭발적으로 몸집을 키워요. 성체가 되면서 죽을 확률이 그만큼 줄어들게 되죠. 조류 중에서도 몸집이 큰 매나 타조가 이와 비슷한 성장 과정을 거칩니다.

또 공룡은 알을 품어 새끼를 길렀어요. 1920년 몽골에서 처음 발견된 오비랍토르라는 육식 공룡의 화석은 알을 품은 모습이었죠. 오비랍토르의 경우 몸길이 1.5m의 소형 공룡이라 직접 알을 품었지만, 대형 공룡들은 몸무게 때문에 불가능했죠. 대신 둥지에 알을 놓고 식물 등으로 따뜻하게 감싸 부화시키는 방법을 썼어요.

자손 번식을 위해 이성을 유혹하는 구애 행위를 했다는 연구 결과도 최근 나왔습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대형 육식 공룡이 짝짓기를 위한 구애 행위를 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 화석을 미국 콜로라도주의 백악기 지층에서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고 지난달 발표했습니다. 아크로칸토사우루스라는 공룡이 땅을 판 흔적인데요. 수컷 공룡이 매력적인 암컷을 보면 땅을 파면서 사랑을 고백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알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깊고 튼튼하게 땅을 팠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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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관은 “발로 땅을 파던 흔적은 대형 수컷 육식 공룡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구애 행동을 한 최초의 증거”라며 “공룡의 행동학적 특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설명했습니다. 비슷한 행위를 하는 동물은 현재도 볼 수 있어요. 바로 땅에 알둥지를 만드는 새 종류죠. 임 연구관은 “바다오리의 경우 활발하게 땅을 파 구애를 한다”며 “타조 역시 지름 2.3m에 달하는 구멍을 만드는데 공룡의 행동과 매우 비슷하다”고 말했습니다. 여전히 공룡에 대해 100% 알 수는 없지만, 꾸준한 연구를 통해 오래 전 지구를 지배했던 이들의 삶을 추측하고 알아가는 중입니다.

공룡의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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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크로랍토르

골반(엉덩이뼈)의 모양이 새나 도마뱀 중 어떤 것을 닮았는지에 따라 구분한다.

용반목
도마뱀과 유사한 골반을 가지고 있다. 육식 식성을 가진 공룡이 많다.
용각류 루펭고사우루스, 브라키오사우루스, 아파토사우루스, 안키사우루스 등
수각류 메갈로사우루스, 벨로키랍토르, 스피노사우루스, 알로사우루스, 티라노사우루스, 미크로랍토르 등

조반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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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반이 새와 비슷하게 생겼다. 대부분 초식 위주의 식성을 가졌다.
각룡류 트리케라톱스, 프로토케라톱스 등
검룡류 스테고사우루스, 켄트로사우루스 등
곡룡류 안킬로사우루스, 힐라에오사우루스 등
조각류 사우롤로푸스, 이구아노돈, 캄프토사우루스 등

화석의 종류

골격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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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공룡의 이빨이나 뼈가 모두 골격화석에 속한다. 이를 통해 공룡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추측할 수 있고, 크기 역시 알 수 있다. 해당 공룡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 단점.

흔적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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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알·배설물 등 공룡이 살면서 남긴 모든 흔적들이 화석으로 변한 것. 소화를 돕기 위해 삼켰던 돌인 위석과, 땅굴을 판 자취 모두 흔적화석에 포함된다. 어떤 습성을 가지고 있었는지 등에 대한 행동학적 특징을 알 수 있다.

원병묵 성균관대 나노기술학과 교수 인터뷰
수학·통계학 원리 적용해 공룡의 생존 전략 밝혀

― 공룡의 생명표란 무엇인가요.

“간단히 말해 몇 세까지 살 수 있는가 정리한 표입니다. 공룡의 경우 어떻게 살았는지를 추측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돼요. 지난 2006년 선행연구를 발표한 에릭슨 플로리다주립대 교수의 논문에는 공룡의 생존율 곡선이 인간과 유사하다고 나왔죠. 이번 연구는 여기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에 수학·통계학 원리를 적용해 공룡의 생존 전략이나 노화 패턴이 타조·매처럼 큰 조류에 가깝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입니다.”

―티라노사우루스 과의 생애 주기가 왜 특별한가요.

“티라노사우루스 과 공룡들의 수명은 약 28세입니다. 이 중 60% 이상을 성장하는데 시간을 보냅니다. 그만큼 새끼를 낳는 시기도 늦어지지요. 인간의 성장기가 삶의 20%라는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죠.”

―몸집이 커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티라노사우루스 과의 공룡은 보통 몸길이 13m, 높이 5m, 체중 6~9t이라는 엄청난 덩치에 힘도 셌죠. 현생 동물 최강의 치악력(무는 힘)을 지닌 바다악어보다 2배 강한 치악력을 가졌다고 해요. 강한 공룡이었지만, 경쟁자도 많았죠. 이들과의 생존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몸집을 키우는 데 투자하는 쪽으로 진화할 수 밖에 없었던 거지요.”

―이 연구에 수학의 원리가 사용됐다고 하는데.

“맞아요. ‘수정된 늘어진 지수 함수’라는 것입니다. 좀 어렵지만 원리는 간단해요. 갓 태어났을 때의 생존율을 100%라 하면, 나이를 먹으며 죽는 경우가 생길 때마다 감소하는 모양을 나타내요. 100%에서 0%가 될 때까지의 수치를 그래프로 그리면 일종의 곡선 형태를 띕니다. 공룡의 삶을 추측하려면 화석 연구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통계 자료를 활용한 수학적 모델의 예측 또한 필요하답니다.”

글=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사진·자료=국립문화재연구소·중앙포토·고성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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