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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사의 힐링 상담 | 불면증 극복] 잠과 싸우지 말라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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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중앙포토

"선생님, 자려는데 잠 안 오는 고통을 아세요?”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아파트에 사는데, 석 달 전 윗집에서 강아지를 샀어요. 그날부터 강아지 뛰어가는 소리가 괜히 신경 쓰이더니, 계속 잠을 제대로 못 자요. 잠이 들더라도 일찍 깨고, 얕은 잠에 들어서 바깥 소리가 다 들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도 못 잔 것 같아요. 그런 날은 머리가 맑지 않고, 몸이 무겁고 피로해서 일하기가 힘들어요. 하루 종일 잠을 못 잤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오늘도 또 못 잘까 불안에 시달리기도 해요.”

자려하면 깨게 마련... 근본 원인 스스로 찾아봐야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불안을 호소했다. “한 달 전, 참다못해 동네 병원에서 수면제를 처방받았어요. 며칠 동안은 정말 푹 잤어요. 약이 아주 잘 듣더라고요. 약에 의존될 수 있다고 해서 약을 끊었는데, 또 한 잠도 못 자는 거에요. 몇 번 반복하다가 겁이 나서 약은 끊고, 주위에서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이런저런 방법을 써 보는데, 하나도 효과가 없어요. 이제 매사 짜증이 나고, 사람 만나는 것도 귀찮고, 의욕도 떨어지고….”

불면증은 가장 흔한 수면장애다. 잠들기 어렵거나 밤에 자주 깨고, 깊은 잠을 못 자거나 아침에 일찍 깬다. 낮 동안 피곤하고 졸리며, 밤이 두렵고 잠 걱정에 시달린다.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두통과 어지럼증도 온다. 불면증은 모든 연령에서 발생한다. 인구의 20~30%가 불면증을 경험하고, 5%는 만성 불면증이다. 여자와 노인에 많지만, 청년 실업과 경쟁 심화로 잠 못 드는 청춘도 늘고 있다. 불면증은 2주가 넘으면 학습되어, 만성 불면증으로 진행된다. 장기화되면 불안증, 우울증이 동반된다.

만성으로 이어지면 불안증·우울증 동반

예로부터 잠은 보약이라 했다. 우리는 잠을 통해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한다. 잠에 대한 잘못된 통설이 있다. ①잠은 7~8시간 꼭 자야 한다. 잠은 개인차가 심하다. 에디슨은 3시간 밖에 안 잤고, 아인슈타인은 10시간을 꼭 잤다고 한다. ②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 뇌에는 개인마다 다른 수면시계가 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잠은 양보다 질로 평가한다. 잠은 하루 컨디션의 80%를 좌우한다. 잘 자고 일어나면 기분이 상쾌하고, 종일 피곤하지 않으며, 낮 동안에 졸리지 않다.

불면증은 스트레스에서 온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교감 신경이 항진되고, 부신피질에서 코티졸이 분비된다. 코티졸은 흥분 호르몬이다. 코티졸이 증가하면 잠을 잘 수 없게 된다.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은 육체적 과로보다 정신적 피로다. 현대인은 종일 정신적 노동과 감정노동에 시달린다. TV와 스마트폰은 정신적 피로를 부채질한다. 우리는 잠시도 쉬지 못한다. 과도한 생각에 지치고, 억눌린 감정으로 소진된다. 현대인은 모두 신경쇠약증을 앓고 있다.

불면증은 자려고 지나치게 노력하는 데서 온다. 이런저런 이유로 잠이 안 와, 꼬박 밤을 새운다. 다음 날은 괜찮으려니 했는데, 밤새 잠을 설친다. 더럭 겁이 난다. ‘잠을 못 자면 어쩌지?’라는 불안이 생기고, ‘잠을 꼭 자야하는데…’라는 걱정이 들어선다. 여러 방법을 써 보는데 도움이 안 되고, 원인이 사라졌는데 잠을 못 잔다. ‘영원히 잠을 못 자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생긴다. 이렇게 자려는 모든 노력은 결국 불면증을 악화시킨다. 불안, 걱정, 두려움과 함께 학습되어, 불면증 습관으로 굳어진다.

불면증은 나쁜 수면습관에서 온다. 좋은 수면습관으로 극복할 수 있다. ①반드시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되도록 정해진 시간에 잔다. ②일어나자마자 바로 햇볕을 쬔다. ③낮잠을 삼가고, 필요하면 30분 내로 잔다. ④오후에 과식을 삼가고, 가벼운 운동을 한다. ⑤술은 자주 깨게 하고, 커피·담배는 잠 못 들게 한다. ⑥침실은 잠 이외 목적으로 쓰지 않는다. ⑦조용하고 편안하고 따뜻한 잠자리를 만든다. ⑧잠이 오면 눕고, 안 오면 일어나고, 오면 다시 눕는다. ⑨밤에 깰 때 시계를 보지 않는다.

수면 보조용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린다. 환경을 편안하게 하는 도구로 수면 베개, 양말, 이불, 안대, 입마개 등이 있다. 감각을 안정시키는 도구로 수면 차, 향기, 음악, 소리 등이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소리로는 귀지 파주는 소리, 장작 타는 소리, 머리 자르는 소리다. 모두 어릴 적 향수를 자극한다. 보조용품은 잠을 조건화시킨다. 개에게 종치면서 밥 주면, 종만 쳐도 침 흘리는 기전이다. 잠을 보조하는 정도로 쓰면 도움이 되지만, 자칫 의존하면 용품 없이는 못 자게 된다.

수면제는 만성 불면증의 원인

수면제 복용이 급증하고 있다. 십 년, 오 년 동안 매일 먹는 사람도 있다. 수면제는 비상약이다. 시차적응이나 잠자리가 바뀔 때, 시험이나 미팅 전날 잠 안 올 때 쓰면 좋다. 잠들기 힘들면 유도제, 자주 깨거나 꿈이 많으면 유지제가 효과적이다. 수면제는 치료약이 아니다. 원인을 치료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불안이 있으면 항불안제, 우울·강박이 있으면 항우울제가 더 효과적이다. 수면제는 만성 불면증의 원인이 된다. 약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무심코 시작하면 마약처럼 못 끊고 장기 복용하게 된다.

자, 그녀에게 돌아가자. 그녀에게 탁월한 처방은 무엇일까? 첫째, 원인을 찾자. 강아지 소리가 계기가 되었지만, 뭔가 다른 원인이 분명히 있다. 원인은 결과를 가져오고, 그 결과는 다시 원인이 되고, 원래 원인은 사라진다. 잘못 채워진 첫 단추를 찾자. 두통의 원인이 꽉 맨 넥타이이고, 요통의 원인은 높은 구두일 수 있다. 최근 스트레스를 점검하고, 바뀐 작은 습관을 포착하자. 남에게 묻지 말고, 자신에게 묻자. 의사에게 묻지 말고, 스스로 찾자. 가정, 직장, 친구 등 인간관계에 문제가 없는가? 환경과 심적 변화로 어려움이 있지 않나? 중요한 선택과 결정에 직면한 게 아닌가?

둘째, 잠과 싸우지 말자. 수면욕은 성욕, 식욕과 함께 삼대 욕구다. 세 가지 특징이 있다. ①쾌락을 가져온다. ②몸이 알아서 한다. ③억누르면 더 강해진다. 잠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오래 깨어있으면 졸리게 되고, 충분히 자면 깨게 된다. 안 자려 하면 졸리고, 자려하면 깬다. 잠은 생각에 따르지 않고, 항상 반대로 간다. 싸우려 하면 더욱 심해지고, 그냥 놔두면 해결된다. 불면증으로 죽는 경우는 없다. 절대 두려워 말고, 깊이 연구하지 말고, 아예 취급하지 말자. 이렇게 외치자. “오늘 밤은 한 잠도 자지 않겠다.”

셋째, 아이처럼 살자. 아이는 늘 심심하다. 어른들이 바쁜 것을 이해 못한다. 노는 시간과 쉬는 시간이 많다. 아이는 매일 싱싱하다. 어른들이 지친 것을 이해 못한다. 씩씩하게 뛰어놀다 씩씩거리며 잠에 떨어진다. 아이는 쉽게 산다. 어른들이 힘들게 사는 것을 이해 못한다. 싫어하는 것은 안 하고, 생각하지 않고 한다. 쉽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요령껏 살고, 포부를 품지 말고, 빈둥빈둥 노는 것이 아니다. 남은 남대로 두고, 나는 최선을 다하고, 일어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후박사 이후경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 [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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