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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의 위기, 전체의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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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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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석
시인·단국대 교수·영어영문학

최근 입에 담기조차 힘든 흉악 범죄가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더구나 친족을 향한 상상 이상의 폭력 앞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는 것이다.

하나의 장기에 치명적 문제가 생겨 생명체가 죽듯
흉악 범죄도 그것을 방치한 사회 시스템의 문제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범죄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우째 저런 일이”라는 경악의 감탄사에서 앞으로도 뒤로도 더 나아가지 않는다. 그 정지된 사유의 지점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상식’ 안에 있으며, 범죄의 환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안도감에 젖어 일상으로 바로 돌아간다. 그런 사건은 먼 ‘외계’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예외적 사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한 사회의 모든 부분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부분들의 유기적 집합이 전체이므로, 부분은 전체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부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전체로서의 사회라는 몸의 ‘징후’를 보여준다.

가령 교육 문제를 생각해보라. 그동안 수많은 정책들이 나왔지만 해결의 기미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교육 문제를 보면 마치 링거를 주렁주렁 달고 겨우 연명하고 있는 환자 같다. 교육이라는 ‘부분’의 고질병은 한국 사회라는 ‘전체’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절대 치유되지 않는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생계에 지장이 없고 무시당하지 않으며, 인간의 존엄성을 평생 잃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복지 시스템이 잘 가동되고 있다면 굳이 대학에 가려고 사력을 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장담컨대 ‘전체’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 어떤 기발한 입시 정책이 나와도 한국의 교육은 링거로 무장한 ‘중병의 지속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교육 문제는 교육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가계의 경제·문화·사회적 가치체계 등 다른 ‘부분’들과 연쇄적으로 맞물리면서 사회 ‘전체’를 불행하게 만든다.

 개체로서의 한 생명이 사망할 때에도 몸의 모든 장기가 망가져 죽는 것이 아니다. 다른 부분은 다 멀쩡한데 그중 단 하나의 장기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몸의 다른 부분들은 무용지물이 되고 ‘전체’로서의 몸은 (바로 그 하나의 장기라는) ‘부분’ 때문에 종말의 운명을 맞이한다. 이런 의미에서 부분을 고립된 개체로 간주하는 생각이야말로 매우 안일하고도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부분의 위기는 전체의 위기이며, 전체의 위기는 부분의 위기다.

최근 발생한 흉악 범죄들은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의 질환의 정도가 ‘흉악’한 단계에 왔다는 징후다. 범죄는 연쇄된 사회의 총체적 질환의 강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가령 대부분의 흉악 범죄는 사회의 ‘취약한 지역의 취약한 계급’에서 발생한다. 생계의 문제로부터 해방된 중산층 주거 구역에서 흉악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은 훨씬 더 떨어진다. 가령 흉악 범죄의 추이를 통계화한 국가(검찰청)의 한 자료는 특정 시기에 흉악 범죄가 증가하는 원인을 “경제 위기로 생계형 범죄의 급증과 더불어 경제·사회의 양극화 현상 심화 및 신용불량, 개인파산 등 경제적 갈등과 인륜경시 풍조가 사회 및 부유층에 대한 적대감으로 표출되는 등 경제·사회적 갈등이 범죄 현상으로 표출되어 범죄 급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서툰 문장을 감안하더라도) 흉악 범죄의 주요 원인이 생계 문제, 양극화, 계급 갈등 등 결국 “경제·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국가가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범죄의 최종 결정은 범죄의 주체인 개인의 몫이다. 그러나 모든 개인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개인이며, 그런 의미에서 범죄를 구조화하는 것은 개인 이전의 사회 시스템이다. 그러니 최근의 흉악 범죄에 대해 경악해야 할 대상은 사건의 표피에 나타난 폭력성만이 아니라 그런 폭력성을 유발시킨 나, 너, 우리, 사회 전체가 되어야 한다. “우째 이런 일이?”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는가.

사회적 취약자들을 삶의 마지막 난간에 서도록 방치한 것, 생존의 모든 길이 막혀 있다는 극단적인 절망감으로부터 아무도 그들을 구해내지 못한 것, 누군가 옆에 있어서 그들을 도울 것이라는 최소한의 공동체 의식도 부재한 사회, 이런 것들이 지금, 여기, 우리의 민낯이다.

오민석 시인·단국대 교수·영어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