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상연 논설위원
세계를 경영하는 미국 정치인도 욕을 먹긴 마찬가지다. 민주주의 교과서인 미국 의회가 슬금슬금 우리 국회를 닮고 있기 때문이다.
화풀이성 물갈이만으론 3류 정치 못 바꿔
모든 길이 국회로 통하는 후진구조 없애야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하던 5~6년 전 미 공화당 에드 로이스, 민주당 엘리엇 엥겔 의원을 같은 날 인터뷰한 기억이 있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이은 연평도 포격으로 의회 움직임이 주목되던 때였다.
오바마 대통령 얘기가 나오자 로이스 의원이 “마르크시스트 대통령에 빨갱이 정부”라고 내뱉어 깜짝 놀랐다.
조금 뒤 엥겔 의원과 보좌진에게 공화당은 오바마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라고 묻자 “미 의회에 파리떼가 늘었는데 공화당의 썩은 냄새 때문”이라며 씩씩댔다. 중간선거 직후로 공화당 의원이 크게 늘어난 상황이었다. 한 술 더 떠 “미국 유권자들이 북한·이란을 싫어하지만 의회도 싫어하는 것 같다”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 걸작이다. “싫어하는 세 가지는 맞는데 순서가 틀렸다. 의회·이란·북한 순이다.”
물론 반쯤은 농담이다. 하지만 반쯤은 사실이기도 하다. 신기한 건 욕먹는 사실을 이렇게 잘 아는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그만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임기 2년의 미 하원엔 20선 의원이 수두룩하다. 14~15선은 돼야 상임위원장이 된다. 대부분 살아남는 방법에 훤하고 실제로 치열하게 표밭을 누비는 진정한 프로들이다. 인터뷰 당시 10선 안팎이던 로이스, 엥겔 두 의원도 선수를 높여 지금은 각각 하원 외교위원장과 외교위 민주당 간사 자리에 올랐다.
욕먹는 정도나 버티는 욕심만으론 미 의회를 뺨치는 곳이 여의도 정치판이다. 국내 주요 기관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는 언제나 압도적 꼴찌다. 우간다 정치인보다 신뢰를 못 받는 게 우리 의원님들이다. 그런데도 망신살이 뻗치거나 낙천·낙선으로 떠밀리지 않는 한 자기 발론 안 나간다.
여기까진 미국 정치와 다를 바 없다. 다른 점은 우리 선량들은 아마추어가 너무 많다는 거다. 미국의 현역 의원 교체율은 10%도 안 되지만 우리 국회는 초선 의원 비중이 늘 과반 수준이다. 표결이건 출마건 위에서 결정이 내려오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진입 장벽이 그다지 높지 않아 적당한 경력에 당 지도부와 잘 친해 놓으면 공천장을 거머쥐고, 또 많은 지역에서 ‘공천=당선’으로 통한다. 양산되는 아마추어 정치인도 고생이고 정치도 고생인 딱한 국회다.
코앞에 닥친 20대 총선도 비슷한 모양새다. 오히려 출발선이 조금은 더 뒤쪽이다. 바꾸자는 열기는 큰데 거론되거나 덤비는 새 피의 양극화가 심해져서다.
예비후보자 10명 중 대략 4명이 전과자란 통계가 나왔다. 전과 10범도 있고 살인 미수범도 있다. 4년 전에 비하면 3배가량 늘었다. 당선되면 고위공직자를 검증하는 인사청문위원이 될 사람들이니 부끄러운 수치다.
반대쪽은 세계 1등의 황제들이다. 바둑의 전설 조훈현과 히말라야 주인공 엄홍길, 피겨의 여왕 김연아와 축구 스타 차범근까지 등장했다. 이들을 새 피로 떠올린 발상법은 한국 정치답다. 되는 것도 없지만 안 되는 것도 없는 게 한국 정치이니 그렇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화됐을 경우다. 바둑밖에 모른다는 조훈현이고 산밖에 모른다는 엄홍길이다. 이들 영웅에게 한국 정치를 확 바꿔 달라고 주문하는 건 아닐 게다. 그저 인기를 잠시 빌려 총선에 도움을 받자는 걸 텐데 그래도 되는 건진 모르겠다.
이종격투기 선수 중 최초로 메이저 챔피언 벨트를 맨 벤 핸더슨이나 수퍼보울에서 MVP를 차지한 미식축구 선수 하인즈 워드는 두 사람 모두 한국인 어머니를 둔 미국인이다. 미국 민주주의를 수입하자고 이들에게 공천장을 주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일 아닌가.
정치의 계절이다. 누군가는 정치를 해야 한다. 세계 1등이 나서 3류 정치를 1류 정치로 바꿨으면 물론 좋겠다. 하지만 정치는 얼굴로 하는 게 아니다. 그럴 수 있는 건 1류 정치인이다. 없다면 이제라도 길러내야 한다. 문제 의원보다 더 큰 문제인 우리의 의원 선발 시스템을 수술하는 게 출발선이다. 내부에서 1류 정치인을 키우는 선진국 정당에서도 배워야 한다. 그래야 모든 길이 국회로 통하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