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정부·기업체, 연구생태계 복원하고 논문 중심 풍토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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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포스트 실리콘’ 시대를 대비한 총성 없는 전쟁은 국내에서도 한창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 특히 포스트 실리콘 시대를 주도할 기초 체력이 점점 부실해지고 있다는 점은 큰 문제다.

‘포스트 실리콘’ 대비 하려면

일 예로 국내 최고의 반도체 연구기관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소속 44명의 소속 교수 중 연관 분야가 아닌 순수 반도체 전공 교수는 10명에 그친다. 이중 30~40대 교수는 아예 없다.

 반도체 관련 정부 지원도 줄어들고 있다. 16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2년 986억7000만원이던 반도체 산업 연구개발(R&D) 지원 관련 예산은 올해 356억원으로 3분의 1토막이 났다.

 포스트 실리콘 시대를 잡기 위해선 대학과 정부, 기업 간 연구 생태계 복원도 필수다. 기업은 속성상 양산 기술 개발에 주력할 수 밖에 없는 만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새 기술을 만들어 내는 일은 대학과 정부의 몫이다.

성공한 반도체 연구 모델로는 미국의 SRC(SemiConductor Research Corporation)가 꼽힌다. SRC는 미래 반도체 기술 연구를 위해 지난 1982년 미국 내 15개 반도체 기업과 정부가 참여해 연간 1억 달러(한화 1198억원)를 출연하면서 시작됐다. 출범한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SRC는 활발히 활동 중이다.

우리나라에도 2013년부터 진행 중인 ‘미래 반도체 소자 개발사업’이 있지만 과거와 같은 추진력을 갖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정부 지원도 점차 줄어드는 현실이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반도체처럼 대규모 투자와 민·관·학간 협력이 필요한 사업은 정부주도형 개발이라는 명제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며 “반도체가 클 만큼 컸다고 지원을 줄인다면 세계 최고의 우주과학 기술을 가진 미국 정부가 미항공우주국(NASA)등에 지원을 하지 말자는 얘기와 비슷하다”고 꼬집었다.

 포스트 실리콘 시대를 주도하기 위해선 대학도 바뀌어야 한다.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로 대변되는 논문 중심의 실적주의 풍토가 개선돼야 한다. 1960년부터 본격화한 반도체 관련 연구는 상대적으로 논문을 내기가 어려워 우수 연구 인력들이 등한시하는 상황이다.

반도체 산업의 기초가 되는 연관산업의 기술력도 꾸준히 쌓아야 한다. 일 예로 SK하이닉스의 M14 공장에 투자될 15조원 중 건설비(2조3800억원)를 제외한 나머지 12조6000억원 가량은 생산설비와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특수가스 등을 구입하는데 들어간다. 이는 대부분 해외로 나가는 돈이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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