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勞組의 속성 아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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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노사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혼란스럽다. 또 노사 관계의 각종 현안들은 복잡하기 짝이 없다.

복잡한 문제를 푸는 손쉬운 방법 중의 하나는 곁가지를 쳐내고 핵심적인 논점 한가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복잡다기한 노사 문제의 중심엔 노동조합이 있다.

노동조합을 가장 단순하게 정의하면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조직된 단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기능은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신장하는 것이다.

최근에 분규를 일으킨 노조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일견 복잡하고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곁가지를 떼내고 보면 역시 조합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파업을 벌인 조흥은행 노조의 요구는 '매각 반대'였다. 그러나 매각 문제는 처음부터 노조가 간여할 수도 없고, 추구해야 할 목표도 아니었다. 매각 문제를 빼고나면 노조의 핵심적인 요구 사항이 고용보장과 임금 인상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매각 반대는 이 같은 현실적인 이익을 얻어내기 위한 지렛대였다. 신한은행 노조가 협상 결과에 반발해 촛불시위까지 벌인 것은 두 노조가 추구하는 목표가 소속 조합원의 이익 극대화였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사화(公社化)에 반대한다며 파업에 나선 철도 노조의 목표는 '공사화 반대'가 아니었다. 철도청의 구조개혁은 노조가 반대한다고 중단되거나 변경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철도 노조 조합원들이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는 철도청이 공사로 바뀔 경우 연금 수혜액이 1인당 최대 1억원까지 줄어든다는 것이다. 공무원에서 민간인으로 신분이 바뀜에 따라 공무원연금에서 국민연금으로 전환되는 데서 오는 불이익이다. 노조로서는 이 손해를 줄이는 것이 조합원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다.

여기서 노조의 이기주의를 탓할 것은 없다. 원래 노조는 응집력이 매우 큰 이익집단이고,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는 것은 노조의 기본권리이자 존립 목적이기 때문이다. 절차적인 적법성 여부를 떠나 파업은 노조가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협상 수단이다. 물론 불법 파업의 위험과 득실은 노조 스스로 가늠해 봐야 한다.

이렇게 보면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불법 파업들은 노조나 사용자 측에서 노조의 이기적인 속성을 이해하고 찬찬히 문제 해결에 나섰으면 피할 수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조가 추구하는 경제적 목표들은 대개 협상의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책의 대상으로 주목해야 할 또 한가지 노조의 속성은 분배 개선에 역행한다는 점이다. 우선 조직된 대규모 노조가 파업을 벌이거나 지나치게 임금을 올리면 그 피해는 대개 힘없는 중소기업과 그 종업원들에게 돌아간다.

경제학 교과서나 노조활동이 활발했던 선진국의 경험을 보면 대기업 노조의 임금인상은 조직되지 않은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실질임금 하락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당연히 분배구조를 악화시킨다.

또 한가지는, 조직된 노조는 사회 전체적으로 고용의 증가를 막고 실업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강력한 노조의 존재는 시장의 변화에 따른 기업의 구조조정을 어렵게 하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걸림돌이 된다.

노무현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분배구조 개선의 핵심적 과제로 삼고 있다. 동시에 노사 관계에서는 약자인 노조의 힘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이 두가지 정책은 서로 상충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노동정책의 초점을 노조의 입지를 넓히는 데 맞춘다면, 또 다른 정책 목표인 분배구조의 개선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는 얘기다.

김종수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