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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보드 스타' 로 떠오른 클로이 김 "가슴에 태극기 대신 성조기를 달겠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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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는 웃음이 많다. 환한 얼굴처럼 성격도 밝다. 그러나 높이 6m, 길이 170m 가량 되는 반 원통형 슬로프 앞에만 서면 눈빛이 달라진다. 화려한 점프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슬로프를 자신의 세상으로 만든다. 스노보드 스타로 떠오른 재미동포 2세 클로이 김(16·한국 이름 김선)이다.

2000년생 클로이는 스노보드 하프파이프(halfpipe)를 타기만 하면 '작은 새' 로 변신한다. 반 원통형으로 된 슬로프의 양쪽 벽을 오가며 점프와 회전을 하는 이 종목에서 연일 새로운 기록을 쓰고 있다. 클로이는 지난 6일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열린 미국 그랑프리에서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이 종목 100점 만점을 받았다.

그는 '백투백 1080' 이라는 기술을 완벽하게 구사했다. 백투백 1080은 한쪽 슬로프에서 공중 3회전을 한 뒤 반대쪽 슬로프에서도 3바퀴를 연속해서 도는 고난이도의 점프 기술이다. 남자 선수들도 하기 힘들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데 클로이는 여자 선수 최초로 이 기술을 성공했다. ▶기본동작▶회전▶테크닉▶기술 난이도▶착지 등 5개 평가 항목에서 모두 만점을 받은 클로이는 "나도 믿을 수 없었다"며 놀라워했다.

지난 1일 미국 콜로라도주 애스펀에서 열린 겨울 X게임에서도 우승하며 대회 2연패를 이룬 클로이는 14일엔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열린 겨울 유스올림픽에서 96.5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스노보드 스타 클로이 김에 대한 미국 언론의 반응도 뜨겁다. USA투데이와 야후스포츠는 '클로이 김이 스노보드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했고, ESPN은 '클로이는 10대 수퍼스타'라고 소개했다. 세계적인 스포츠용품업체 나이키는 클로이가 경기에 입고 뛸 의류를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서 태어난 클로이 김은 아버지 김종진, 어머니 윤보란 씨의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26세이던 1982년 미국으로 건너간 김 씨는 주유소에서 일하면서 공과대학을 다녔다. ESPN은 '20대 초반 800달러(약 96만원)를 들고 미국에 건너와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다'고 김 씨를 소개했다.

클로이는 4세 때부터 취미 삼아 스키를 탔다. 그런데 클로이가 스노보드에 재능을 보이면서 가족의 일상이 바뀌었다. 6세 때 전미 스노보드연합회 챔피언십에서 3위에 오른 클로이는 8세 때 아예 스위스로 스키 유학을 갔다.

김 씨는 "딸에게 더 넓은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라고 했다. 클로이는 숙소가 있던 스위스 제네바에서 하프파이프 경기장이 있는 프랑스의 스키장까지 매일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 4시간씩 오가면서 훈련을 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밤 11시에야 집에 돌아오는 일상을 2년간 반복했다.

아버지 김 씨는 늘 딸과 함께 하며 그의 성장을 도왔다. 미국에 돌아가서도 김 씨는 하루 수백 km를 차를 운전하면서 딸의 뒷바라지를 했다. 클로이는 "아버지의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나도 없었을 것" 이라고 말했다.

클로이는 체계적으로 스키를 배우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눈이 오지 않는 여름엔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자세를 익혔고, 공중 회전 능력을 키우기 위해 수영장에서 다이빙 훈련도 했다. 그 덕분에 13세에 미국 최연소 스노보드 국가대표에 뽑혔다. 그리고 2014년 월드 스노보드 투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클로이는 "스키장을 오가는 게 정말 지겨울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난 꾹 참아냈다. 그 결과 지금은 스노보드를 더욱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ESPN은 '가장 영향력 있는 여자 스포츠 스타 25명'으로 리디아 고(뉴질랜드·골프), 세리나 윌리엄스(미국·테니스) 등과 함께 클로이 김을 뽑았다. 주간지 타임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명' 중 한 명으로 그를 뽑았다. 지난 2014년 클로이가 거주하는 LA 시의회는 '클로이가 LA의 명예를 드높였다'며 3월19일을 '클로이 김의 날'로 지정했다. 2002년 솔트레이크 겨울올림픽 금메달을 포함해 올림픽에서만 메달을 3개 딴 미국 스노보드 1인자 켈리 클라크(33)는 "클로이는 내가 본 어린 선수 가운데 최고"라고 극찬했다.

클로이는 2년 뒤 부모님의 나라에서 열리는 평창 겨울올림픽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클로이는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에는 너무 어린 나이 탓에 출전하지 못했다. 클로이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가슴에 태극기 대신 성조기를 달겠지만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부모님의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꼭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고 말했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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