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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신 마비된 사람도 축구할 수 있는 날, 곧 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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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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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정 박사(왼쪽 둘째)를 비롯한 ‘수트X’가 ‘UAE 우수 인공지능 및 로보틱스 대회’ 우승 직후 상패와 상금증서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 정윤정]

한국인 출신 로봇 공학도가 공동창업한 미국 스타트업(신생기업)에서 마치 옷처럼 입을 수 있는 획기적인 의료용 보행 로봇을 개발했다.

보행로봇 ‘피닉스’ 개발한 정윤정씨
장애인 혼자 옷처럼 입을 수 있어
UC버클리대 산하 스타트업 일원
“민첩성 갖춘 ‘아이언맨 수트’ 목표”

 정윤정(31) 박사, 호마인 카제루니 교수 등 공동 창업자 5인이 설립한 ‘수트X’가 지난 4~7일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개최된 ‘UAE 우수 인공지능 및 로보틱스 대회’에서 우승했다.

1등 상금만 100만 달러(약 12억원)인 이번 대회는 복지·의료·교육부문 인공지능(AI)·로보틱스 분야에선 가장 큰 규모다. 전 세계 121개국 출신 약 660개 팀이 대회에 참가해 사흘간 로봇을 실연했다.

연세대 기계공학과 출신인 정 박사는 2009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2014년 UC버클리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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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박사가 보행용 로봇을 실연하는 모습. [사진 정윤정]

 수트X가 선보인 상품은 하반신 마비 환자가 휠체어 없이 보행토록 하는 외골격 로봇 ‘피닉스’다. 로봇을 착용하면 휠체어에서 일어나 시속 1.8㎞로 스스로 걸을 수 있다.

곤충처럼 몸을 지탱하는 골격이 밖에 있는 외골격 로봇은 전 세계에서도 미국 록히드마틴·사이버다인, 일본 도요타·혼다, 한국 현대차 같은 글로벌 기업만 개발에 성공했다.

특히 피닉스는 기존 제품과 달리 모듈(부속 여러 개를 하나의 세트로 조립해 놓은 형태)로 제작돼 쉽게 분리가 가능하다.

 정 박사는 “피닉스는 다리 부분과 몸통 부분이 모듈로 따로따로 제작돼 휠체어에 앉아있는 상태에서도 마치 옷처럼 로봇을 착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게도 약 12㎏ 정도로 현재 상용화된 제품(20~24㎏)보다 절반 가량 가볍다.

배터리는 2200밀리암페어(mAh) 규모로 최대 4시간 동안 별도의 충전 없이도 연속 걷기를 지원한다. 가격은 4만 달러(약 4800만원)로 기존 제품(7만~10만 달러)에 비해 경제적이다.

 그가 참여한 수트X는 UC버클리 대학 산하의 스타트업이다. UC버클리에서 로보틱스 실험실을 운영하는 카제루니 교수가 지난 2011년 정 박사를 포함해 학생 5명과 함께 학교 내에서 창업했다. 실험실 활동보다 실제 비즈니스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식 창업 문화’의 표본이다.

정 박사는 “한국 로봇 산업은 대부분 대기업 위주로 진행되지만 미국은 대학원생도 국립과학재단(NSF), SBIR(중소기업 혁신연구) 프로그램을 통해 쉽게 로봇 분야 창업을 할 수 있다”면서 “실리콘밸리에만 우리 팀 같은 로보틱스 관련 스타트업이 100개가 넘는다”고 덧붙였다.

 정 박사의 최종 목표는 회사 이름인 수트X처럼 의학·산업 분야에서 옷처럼 착용이 가능하고 민첩성을 갖춘, 일종의 ‘아이언맨 수트’를 만드는 일이다. “앞으로 5년 안에는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들도 일반인처럼 축구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사고로 걸을 수 없게 된 사람에게 기술의 힘으로 새로운 빛과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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