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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하고 부드러운 치유의 목소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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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6호 6 면

영국의 테너 마크 패드모어(Mark Padmore·55)가 세 번째로 한국을 찾는다. 2008년 첫 내한에서는 계몽시대 오케스트라의 바흐 ‘요한수난곡’에 복음사가로 참여했으니, 리사이틀로는 2014년 12월의 슈베르트 ‘겨울나그네’에 이어 두 번째다.


패드모어는 캠브리지의 킹스칼리지에서 합창을 전공했고 그 이전에는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공부해 음악적 소양이 풍부한 성악가다. 사실 클래식 음악에서 영국을 변방이라고 말하는 건 19세기까지의 얘기일 뿐이고, 20세기 이후에는 가장 큰 음악시장의 하나이자 학구적인 연주자들을 배출하는 메카로 떠올랐다. 영국식 연주자 육성 시스템이 튼튼한 기초를 중시하는 강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성공한 음악가 중에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보이 소프라노로 체계적인 훈련을 받고, 공부도 잘해서 캠브리지나 옥스퍼드 같은 명문대에 진학한 경우가 많다. 패드모어 역시 성가대 출신이다. 대학에서는 전공이 음악이 아니더라도 아마추어 합창이나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다가 음악가의 길을 택하곤 한다. 이처럼 예술적 자양분을 충분히 섭취한 엘리트 계층에서 뛰어난 연주가가 배출되곤 한다. 다만 학구적 취향이 강하다 보니 오페라보다는 합창 음악이나 바로크 음악을 먼저 섭렵하고 그 다음 단계를 밟는 경우가 많다.


패드모어도 그랬다. 1982년 졸업 후 전문 성악가의 길을 걸었지만 독창자보다는 중창단이나 합창단 일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르네상스 음악을 노래하는 ‘더 식스틴’, 바로크 음악에 특화된 ‘콜레기움 보칼레’ 같은 고음악 최고의 명문 단체들을 거쳤다.


독창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은 94년이 되어서야 시작하는데, 바흐의 ‘마태 수난곡’과 ‘요한 수난곡’의 복음사가가 그 출발점이었다. 그렇지만 대중적인 인지도는 영국에서조차 높지 않았다. 같은 영국 테너로서 3살 연하인 이안 보스트리지가 리트 가수로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하는 동안에도 패드모어는 아는 사람만 아는 바로크 스페셜리스트라는 인상이 강했다. 드디어 2002년부터 슈베르트를 시작으로 리트(독일 가곡)에 본격적으로 도전하지만 여전히 보스트리지의 아류로 인식되곤 했다.


사실 두 사람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호리호리한 체격도 그렇고, 지독한 세공을 얹어 노래하는 최고급 리릭 테너의 음색과 학구적인 면모까지도 닮았다. 그러다가 어느새 보스트리지를 위협할만한 존재로 언급되더니 그 다음엔 최고의 라이벌로, 지금은 보스트리지 이상으로 칭송받는 리트계의 역대급 리릭 테너로 자리 잡았다. ‘마태 수난곡’의 복음사가를 사이먼 래틀의 지휘로 노래한 베를린 필 실황은 2013년 영국 BBC 매거진이 ‘올해의 DVD’로 선정했고, 미국의 ‘뮤지컬 아메리카’는 ‘2016년의 성악가’로 패드모어를 찍었다. 보스트리지의 지나치게 날카롭고 예민한 스타일이 거슬리는 관객이라도 치유의 힘을 느낄 법한 패드모어의 진솔함과 부드러운 가창력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21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리사이틀에서 패드모어가 선택한 프로그램은 슈만과 베토벤의 리트들, 그리고 리트의 재해석과 재구성에 대한 식견으로 유명한 독일 현대 작곡가 한스 젠더가 패드모어를 위해 작곡한 신작이다. 특히 슈만의 ‘시인의 사랑’은 무척 짧은 16곡에 주인공의 급박하면서도 비극적인 감정변화를 담은 연가곡으로, 피아노 반주의 예술성에 있어서도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명곡이다. 반주를 맡은 틸 펠너(43)는 여러 피아니스트와 돌아가며 활동하는 패드모어가 가장 호흡이 잘 맞는 피아니스트의 한 사람으로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실력파로, 23일에는 역시 슈만의 피아노곡을 중심으로 한 펠너의 리사이틀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


글 유형종 공연칼럼니스트·무지크바움 대표 divino@hanmail.net, 사진 성남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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