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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누구를 위한 다리인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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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 게이트 가상도. 코펜하겐 항구 양안의 두 고층건물을 연결하는 이 공중 다리의 높이는 65m로 그 밑으로 유람선이 지나다닐 수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경이로운 자전거 전용 다리가 건설된다. 항구 양안의 두 고층건물을 연결하는 이 다리[공식 명칭은 ‘코펜하겐 게이트(Copenhagen Gate)’다]의 높이는 65m로 그 밑으로 유람선이 지나다닐 수 있다.

덴마크 코페하겐 항구에 두 건물 잇는 자전거 전용 다리가 건설되지만 입주자만 이용할 수 있어 논란

하지만 코펜하겐 시당국이 8년 간의 논의 끝에 지난 1월 초 코펜하겐 게이트를 올해 안에 착공하겠다고 발표하자 도시계획가와 시민들이 우려를 나타냈다. 그들은 무엇보다 이 다리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코펜하겐 게이트의 건설은 멋진 도시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이는 코펜하겐 시당국이 접근성보다 모양새를 우선시함으로써 기능성을 희생시킨 사례가 될까 아니면 세계에서 가장 자전거 친화적인 도시로서의 명성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계기가 될까?

코펜하겐은 세계에서 사이클링 인프라가 가장 발달된 도시로 꼽힌다. 이 도시 인구의 45%(국회의원의 63%)가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총연장 320㎞의 자전거 도로 덕분에 자전거 통근이 다른 도시보다 더 수월하다. 교통법과 신호등도 자전거에 유리하다. 자전거 운전자는 대다수 일방통행로에서 역주행이 허용된다. 또 신호등도 자동차보다 자전거 쪽에 초록불이 몇 초 더 빨리 들어오도록 돼 있는 곳이 많다.

또한 신호등 연동체계 덕분에 시속 19㎞로 꾸준히 달리는 자전거 운전자는 코펜하겐 시내를 통과할 때 멈춰 서지 않아도 된다. 최근 코펜하겐 시당국은 자전거 도로 가까이에서 버스가 정차할 때 내장형 LED 디스플레이를 이용해 자전거 운전자에게 알려줌으로써 하차하는 승객과의 충돌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이 충돌방지 시스템이 보여주듯이 코펜하겐에서 자전거 타기는 다른 도시에서보다 더 수월할 뿐 아니라 더 안전하다. 미국에서는 자전거 주행 10억 ㎞당 운전자 44명이 사망한다. 하지만 덴마크의 경우는 헬멧 착용이 의무화되지 않았는데도(자전거 운전자 중 헬멧을 착용하는 사람이 27%에 불과하다) 10억 ㎞당 사망자 수가 14.6명에 불과하다. 이런 상대적 안전성은 발전된 인프라에 기인한다. 자전거 도로를 일반 차로보다 더 높게 만들어 분리시킨 조치가 한 예다.

하지만 교육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다(1947년부터 자전거 타기가 교과과정에 포함됐다). 그리고 대다수가 장애물 코스를 포함한 학교 시험을 통과해 능숙한 자전거 운전자가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고서가 말해주듯이 자전거 운전자가 늘어나면 자동차 사고 위험이 줄어든다. 자동차 운전자들이 자전거 운전자와의 충돌을 피하려고 운전을 더 조심스럽게 한다는 것이 한 이유다.

민영기업들도 코펜하겐의 사이클링 문화 발전에 기여한다. 코펜하겐에는 자전거 상점이 수백 개 있는데 대다수가 관광객에게 자전거를 대여한다. 또 모든 택시에 자전거 거치대가 설치돼 있다. 자전거를 타고 외출했다가 갑자기 날씨가 변덕을 부리거나 술을 마셔서 자전거로 귀가하기 곤란한 사람들을 위해서다. ‘카고(cargo)’ 또는 ‘크리스티아니아 세발자전거(Christiania tricycle)’로 불리는 짐칸이 딸린 자전거가 개발된 곳도 코펜하겐이다. 덴마크 자전거 회사 버처스&바이시클스(Butchers & Bicycles)는 최근 급커브 길에서 한쪽으로 기울어져 운전이 용이하도록 만든 세발자전거로 특허를 받았다. 또 코펜하겐의 신생기업 사이클 세이버스(Cycle Savers)는 자전거 바퀴가 펑크 나거나 체인이 끊어졌을 때 사용자들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신호로 수리 요청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하지만 코펜하겐 시당국이 자전거 문화 발전에 힘쓰는 가장 큰 증거는 항구 곳곳에 8개의 자전거 전용 다리(보행자도 이용할 수 있다)를 건설하기로 한 결정이다. 앞서 말한 코펜하겐 게이트 프로젝트가 그중 하나다. 새로 짓는 주상복합 고층건물 2채의 윗부분을 연결하는 이 공중 다리 아래로 항구에 드나드는 유람선이 지날 수 있다. 이 다리의 건설로 두 건물은 ‘모든 주거시설이 대중교통 수단에서 500m 이상 떨어져선 안 된다’는 도시정책을 준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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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워의 코펜하겐 도심. 이 도시 인구의 45%(국회의원의 63%)가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2008년 공모전에서 미국 건축가 스티븐 홀의 눈길 끄는 디자인이 당선됐다. 자전거 전용 다리를 이용하려면 이용자(자전거 포함)들이 엘리베이터로 다리까지 올라갔다가 건너편 건물로 이동한 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와야 한다. 코펜하겐 시당국은 세계 경제 위기로 최근까지 이 프로젝트를 보류해 왔다. 그러는 동안 문제가 매우 복잡해졌다. 지난해 11월 두 고층건물의 개발업체가 다리의 이용 자격을 건물 입주자로 제한하는 새로운 계획을 요구했다.

코펜하겐시 기술환경처의 모르텐 카벨 시장은 계획 변경에 반대한다. “주민들은 대중이 이 공중 다리를 이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카벨은 말했다. 하지만 시의회는 개발업체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추가적인 계획 변경을 금지했다. 대다수 코펜하겐 시민은 그 다리를 쳐다만 볼 뿐 이용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일각에서 뛰어나다는 평을 듣던 디자인에도 비난이 쏟아졌다. 코펜하겐에서 자전거 인프라 관련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도시계획 전문가 미카엘 콜빌레-안데르센은 이렇게 말했다. “이 디자인은 까치 건축이다. 까치가 반짝이는 것에 이끌리듯 코펜하겐은 규모가 크고 상징적인 건축을 추구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 이 다리는 이제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코펜하겐 시당국은 이전에도 자전거 전용 다리 문제로 난관에 부딪친 적이 있다. 아이슬란드계 덴마크인 미술가 올라푸르 엘리아손이 디자인한 ‘서클 브리지(Circle Bridge)’는 지난해 여름 대대적인 축하 속에 개통됐다. 하지만 복잡한 니하운 지역과 크리스티안스하운 지역을 연결해 자전거 통근자에게 편의를 제공할 목적으로 계획된 도개교 ‘이너 하버 브리지(Inner Harbor Bridge)’는 여러 문제에 발목 잡혔다. 당초 2013년 초 개통 예정이었지만 1차 재정후원자가 파산했다. 그 후 다른 후원자를 찾아 프로젝트가 다시 정상 궤도에 들어섰지만 이번엔 기술적인 문제가 발견됐다. 엔지니어들은 항구의 양안에서 동시에 건설 중이던 다리 양쪽이 가운데서 만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 문제가 마침내 해결돼 마지막 연결 부분이 지난해 여름 설치됐다. 하지만 그 밖에 소소한 문제들이 남아 있어 이 다리는 아직도 개통을 못했다.

코펜하겐 게이트 개발업체는 공중 다리를 모든 자전거 운전자와 보행자에게 개방하는 대신 가까운 곳에 제2의 다리(보통 높이의 도개교)를 건설해 대중에 개방하자고 제안했다. 그렇다면 굳이 공중 다리를 건설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코펜하겐에는 놀랄 만한 건축물(오페라 하우스와 블루 플래닛 수족관, 블랙 다이아몬드 도서관 등)이 많지만 그 건물들은 대중을 위해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 덴마크인은 실용성을 매우 중시한다. 도시계획 전문가 콜빌레-안데르센은 이렇게 말했다. “덴마크인에게 왜 자전거를 타느냐고 물으면 건강이나 환경을 위해서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A지점에서 B지점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 리사 어벤드 뉴스위크 기자 /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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