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무성·유승민 연합군 최경환과 맞짱, 문재인·안철수는 생존 경쟁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65호 4 면

1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운데)가 지난해 2월 3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기에 앞서 최경환 당시 부총리(왼쪽), 전날 원내대표에 선출된 유승민 의원을 감싸 안고 있다.

2 지난달 17일 문재인 당시 더민주 대표(왼쪽)가 당내 행사에서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3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에서 물러난 김종인 전 의원이 2014년 6월 새정치연합 워크숍 특강에 나서 이 당 소속이던 안철수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김경빈·김상선·박종근 기자

“(정부가) 경제정책을 펴는데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뒷다리를 잡지 않았나.”(새누리당 최경환 의원, 지난달 30일 대구 북구갑 하춘수 새누리당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새누리당 유승민 의원, 1일 대구 동구을 예비후보 등록 후 페이스북에서 헌법 1조 2항을 인용)


“스스로 꿀리는 게 있는 사람이 나서서 반기를 들더라.”(최경환, 1일 대구 중·남구 곽상도 예비후보 개소식)


“대구·경북 의원들이 대통령의 국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대로 일을 했나. 속이 찔리는 사람이 반발하고 있다.”(최경환, 2일 대구 서구 윤두현 예비후보 개소식)


“정종섭 전 장관이 ‘대한민국 헌법 1조는 잘 지켜지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헷갈려 하는 사람이 있다.”(최경환, 3일 대구 동구갑 정종섭 예비후보 개소식)


지난 한 주, 대구로 남하한 최경환 의원이 연일 휘두른 창날은 매서웠다. 대구·경북(TK)의 친박계 좌장으로 통하는 그의 곁엔 서청원·서상기·조원진 의원과 정홍원 전 총리 등 친박계 노장들이 지키고 섰다. 대구의 선거 분위기도 달궈졌다. 달성군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양식(60)씨는 “지금까진 누가 (총선에) 나오는지 관심도 없었는데 누구를 찍으라 카는지 인자 좀 감이 온다”고 했다.


최 의원의 창끝이 누구를 겨누고 있는가는 자명하다. 유승민(대구 동구을) 의원이다. 3일 정종섭 후보 사무실 곳곳에 붙어 있는 ‘위민위국 수의불이심(爲民爲國 守義不移心·백성과 나라를 위해 뜻을 지키고 마음을 안 바꾼다는 뜻)’ 문구를 본 최 의원이 “배신을 하면 안 된다는 뜻이냐”고 묻자 정 후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해 7월 국회법 파동 때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언급한 이후 유 의원은 친박계에게 배신의 아이콘이 됐다. 최 의원과 친박 예비후보들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권은희(북구갑)·김상훈(서구)·김희국(중남구)·류성걸(동구갑) 등 유 의원과 가까운 대구 의원들은 수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종진(달성군) 의원은 아예 출마를 포기했다.


유승민·최경환이 노골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는 가운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26일 “권력자가 찬성으로 돌자 국회선진화법에 반대하던 의원들이 모두 다 찬성으로 돌아섰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한 데 이어, 31일엔 비박계 의원 50여 명을 모아 “다 살아서 20대 국회에 돌아오라”고 했다. 친박계가 술렁거렸다. 그런가 하면 1일엔 박 대통령의 생일(2일)을 축하하는 접시 모양의 도자기를 선물했다. 중국 정부가 ‘국가1급 예술가’로 공인한 이의 작품이다. 이른바 김무성의 치고 빠지기 전략이다.


김무성과 최경환, 유승민은 여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3인이다. 이들은 과거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함께 올인했던 동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4·13 총선을 두 달여 앞두고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건 대회전을 시작했다.

“최경환 장비, 김무성 유비, 유승민 주유”세 사람의 상황을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에 비유하는 이들도 있다. 하북(河北)을 손에 넣은 조조는 천자를 등에 업고 208년 천하통일을 위해 대군을 이끌고 남쪽의 형주(荊州)와 동오(東吳)로 향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이 지역의 손권과 유비는 연합군을 결성해 조조에 대항했고, 결국 대승을 거둬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가 실현됐다. 새누리당 3인의 현 상황이 적벽대전을 앞둔 세 호걸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최 의원은 TK를 비롯한 영남권 전역에서 ‘진박(眞朴·진실한 친박)’으로 불리는 박 대통령의 사람들을 당선시켜야 하는 지상과제를 부여받았다. 박 대통령의 분신인 그의 뜻대로 총선이 끝난다면 임기 말까지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굳건해진다. 이 경우 김 대표와 유 의원은 각각 부산·경남(PK)과 TK에서 정치적 자산에 큰 상처를 입을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두 사람 간에 ‘비박 연합’의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삼국지인물전』의 저자인 김재욱 고려대 한자한문연구소 연구교수는 “인물의 캐릭터는 다르지만 상황적으론 최경환·유승민·김무성이 적벽대전 때의 조조·유비·손권에 비유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세 사람은 2007년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한솥밥을 먹던 동지였다. 당시 김 대표는 조직총괄본부장, 유 의원은 정책메시지 총괄단장, 최 의원은 상황실장으로 참가했다. 캠프가 꾸려진 직후의 영향력은 최 의원이 다른 두 사람에 미치지 못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박근혜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진영 의원과 김무성·유승민 세 사람을 당시엔 유비·관우·장비에 비유하곤 했고, 최 의원은 동등한 격이 되지 못했다”며 “당시 3선에 사무총장을 지냈던 김 대표가 한마디를 하면 다른 초선들은 주눅이 들어 대꾸도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2005년 박근혜 대표 비서실장을 지냈던 유 의원도 ‘BBK 주가조작 사건’과 이명박 후보의 재산 은닉 의혹 등을 폭로하며 캠프 내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하지만 최 의원도 점점 자신의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캠프에 참여했던 인사는 “최 의원은 박 대통령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자기 주장을 설파하는 능력을 지녔다. 박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마다 않았던 유 의원과 다른 점이다. 또 ‘문고리 비서들’과의 관계도 원만했다”고 회고했다.


반동탁 연합군에 함께했던 조조·유비·손견(손권의 부친)이 실패 후 각자도생 했듯, 세 사람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다른 길을 갔다. 김 대표는 세종시 문제 등에서 박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를 내며 독자 노선을 걸었다. 유 의원도 의정활동에만 전념했고 박 대통령의 대선 재도전 때인 2012년에는 ‘새누리당’으로의 당명 변경에 반대하는 등 박근혜 비대위를 비판하며 ‘탈박(脫朴)’으로 불렸다. 그 뒤 김 대표와 유 의원은 당 대표와 원내대표에 선출돼 ‘비박’을 대표하는 유력 주자들로 발돋움했다. 한편 2009년 이명박 정부에서 ‘친박계’ 몫 지식경제부 장관을 맡으며 내공을 쌓은 최경환은 경제부총리와 총리 대행까지 역임하며 친박계의 거물로 성장했다.


친박계와 비박계 간 파열음은 최경환 대 김무성, 최경환 대 유승민의 파열음이기도 하다. 최 의원과 유 의원은 TK 맹주를 놓고 큰 싸움을 시작했고, 친박계 좌장인 최 의원은 김 대표의 선거전략을 연일 문제 삼고 있다. 한때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로 불렸던 김 대표와 유 의원은 계속 소통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최근 사석에서 유 의원의 총선 당선을 낙관하기도 했다. 유 의원의 측근 의원은 “둘 사이엔 끈끈한 무언가가 있다. 마치 연애하는 사이처럼 투닥거리다가도 가까워지곤 한다”고 했다.


세 사람의 성격도 개성이 뚜렷하다. 중국 전문가인 유광종 유스웍스콘텐츠연구소장은 “삼국지 인물로 따지면 최 의원은 저돌적이지만 다소 무딘 캐릭터인 장비, 김 대표는 우유부단하지만 권력자 아래에서 더부살이를 하면서도 힘을 길러낸 유비가 적절하다. 유 의원은 자존심이 강하고, 장군이면서 학식이 뛰어난 문장(文將)이었던 주유가 맞다”고 분석했다. 김재욱 교수는 새누리당이 여당이란 점을 들어 세 사람을 패권국이었던 위나라 신하들에 빗댔다. “유승민은 조조가 권력욕을 드러내는 것을 막으려다 죽음을 맞이한 순욱이나 공융과 가깝다. 김무성은 조조 앞에서 대권욕을 숨기고 몸을 낮추는 사마의, 최경환은 조조에 대한 충성도가 높고 용맹하며 물불 안 가리는 전위나 허저를 연상케 한다”고 평했다.


총선 결과가 적벽대전처럼 친박의 패배로 흘러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온라인 ‘삼국지 연구소’를 운영하는 정원기씨는 조조의 패인에 대해 “시간에 쫓겨 갓 정복한 형주의 민심을 수습하지 못한 채 공격을 서둘렀고, 궁지에 몰린 유비와 손권을 압박해 둘이 힘을 합치게 만듦으로써 스스로 난이도를 높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친박 진영으로선 민심을 거스르지 않고 비박의 단결을 봉쇄해야 이길 수 있다는 얘기다.


총선 결과의 핵심은 유 의원의 당선 여부다. 친박 진영 내에서도 “유승민이 당선되면 ‘배신의 정치 심판’이란 구호에 대구 민심이 응답하지 않은 것이 되므로 청와대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는 “유 의원이 살아 돌아오면 차기 TK 대선주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문재인 유표, 안철수 원소, 김종인 여포”야권도 또 다른 일대 결전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2일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이 17명의 현역의원으로 공식 창당했고, 127석에서 109석으로 줄어든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은 문재인 전 대표가 대표직 사퇴라는 고육책을 쓰면서 탈당 행렬이 멈춰 섰다. 더민주의 리더십은 김종인이라는 외부인사에게 통째로 넘어갔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더민주와의 선거연대는 없다’고 일찌감치 배수진을 치면서 양당은 텃밭인 호남과 수도권 진검승부를 벼르고 있다.


새누리당이 적벽대전이라면 야권의 모습은 관도대전을 연상케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적벽대전 8년 전인 200년 조조와 원소가 하북의 패권을 두고 결전을 벌여 조조가 승리, 전국적 패자로 부상할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유광종 소장은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와 국민의당 중 한쪽이 확실히 승기를 잡을 경우 대선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삼국지 전문가들이 안 대표를 원소에 비유한 점은 흥미롭다. 유 소장은 “생각은 많으나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마오쩌둥의 원소 평을 소개하며 “다재다능했지만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에 못 내려 세력을 키우지 못했다”고 평했다. 김재욱 교수는 “머리는 좋은데 결정적일 때 자기 마음대로 한다. 이미지는 좋은데 사람을 잘 안 믿는다”는 공통점을 들었다.


하지만 더민주엔 조조 같은 지도자가 없다는 점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해서 “전투적이지 못하고 타이밍이 늦으며 우유부단하다는 점에서, 호남이나 친노에 비유될 형주라는 전략적 자산을 가지고도 세력을 확장하지 못한 유표에 비견된다”고 설명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전두환 정권의 국보위 참여 전력과 여야를 넘나든 행적으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유 소장은 김 위원장에 대해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도 시시비비가 뚜렷하지 않아 자신의 진영을 갖지 못하고 여러 곳을 떠돌아다닌 여포를 연상케 한다”고 했다.


결국 승부는 유능한 책사나 장수보다 군주의 몫이다. 관도대전에서 승부의 키를 쥔 이는 원소였다. 그는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전쟁의 판을 짜는 능력과 지역 기반을 가지고 있었으나, 우유부단과 측근에 대한 지나친 의존으로 패전을 가져왔다. 원소에 비유되는 안 대표와 국민의당이 얼마나 유능함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이번 총선의 판세가 좌우되리란 것이 중론이다.


여야를 이끌고 있는 키맨들의 시선은 이미 총선 이후를 바라보고 있다. 여의도엔 올 4월 이후의 다양한 정계개편 시나리오들이 떠돌고 있다. 새누리당에선 총선 직후인 7월께 전당대회가 치러진다. 여기서 대선에 출마하지 못하는 당 대표가 선출된다. 대선 1년6개월 전부터는 선출직 당직자가 대선에 나갈 수 없는 당내 규정 때문이다. 김 대표가 총선에서 과반수 이상의 전과를 올릴 경우 친박계에 당권을 양보하고 대신 자신의 대선 출마를 인정받으려 들 것이란 시나리오도 제기된다. 또 최 의원의 경우 본인이 대권에 뜻이 있더라도 임기 마지막에 당의 전폭적 지원을 바라는 박 대통령이 그의 대표 출마를 원할 경우 물리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있다. 지금은 으르렁대지만 김무성과 최경환의 전략적 제휴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친박의 공세를 견디고 살아 돌아오는’ 유승민을 중심에 세운 각본도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의당이 선전한다면 당내 압박에 시달리는 유 의원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줄 수도 있다”고 했다. 영남을 배경으로 하는 유승민과, 호남이 주축인 국민의당이 영호남 화합형 중도 정당으로 힘을 합칠 수 있다는 그림이다.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도 “국민의당이 기존 야당의 타성에서 벗어나 개방적이고 실용적인 중도 정당으로 자리매김한다면 상당히 큰 확장성을 가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옹립하려는 친박 세력과 비박 세력이 갈라서 새누리당이 총선 뒤에 쪼개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널리 퍼져 있다. 문재인과 안철수의 재결합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국민의당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안 대표는 문재인과의 재합작을 진보세력 지지층으로부터 강요받게 될 수도 있다.


총선 뒤 대선 가도에선 누가 누구의 손을 잡고 있을까. 제갈량이 천하삼분지계를 기획했듯 2016년 한국 정치에서 새로운 합종연횡의 설계자가 등장할지도 관심이다.


이충형·추인영 기자 adch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