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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때 볼 만한 책들] 자물쇠 기술자, 바람잡이, 갈퀴…노인 5인조 ‘은행털이의 재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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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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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지음
정장진 옮김, 열린책들
592쪽, 1만4800원

또 스웨덴 소설이다. 2013년 국내 출간돼 이듬해까지 맹위를 떨쳤던 장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지난해 소개돼 장기간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머물렀던 『오베라는 남자』 모두 작가가 스웨덴 사람이다.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는 작가만 같은 스웨덴 사람인 게 아니다. 짧지 않은 소설 분량, 역시 짧지 않은 소설 제목, 익살맞으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묻어나는 소설의 질감까지 비슷하다.

출판가에 따르면 따뜻한 스웨덴 소설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북구의 혹독한 추위 때문이었을까. 이전까지는 스릴 넘치는 추리소설이 대세였다고 한다. 국내에도 소개된 ‘밀레니엄’ 시리즈를 떠올리면 수긍 가는 분석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소설이 따뜻해졌다는 얘기다. 『감옥에…』를 포함해 최근 스웨덴 베스트셀러들은 그런 흐름의 맨 앞에 위치해 있는 셈이다.

소설은 79세 메르타 할머니의 어처구니 없는 은행털이 시도로 시작한다. 보행기의 도움을 받아야 거동이 수월한 할머니, 다짜고짜 은행창구를 찾아가 ‘이것은 완벽한 은행털이’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 쪼가리를 들이민다.

그리곤 역시 다짜고짜 300만 크로나를 내놓으라고 다그친다. 결말은 예상대로다. 정신 상태가 살짝 이상해진 것으로 판단한 은행직원들, 할머니를 잘 달래 택시까지 불러 할머니가 거주하는 노인요양소로 돌려보낸다.

농담 같은 에피소드로 시작하지만 그게 결코 농담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게 소설의 비밀이다.

무엇보다 캐릭터가 그럴 듯하다. 메르타 할머니는 서너 차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대형 범죄의 A부터 Z까지 핵심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전략가. 큼직한 자물쇠를 따는 등 손재주가 좋아 ‘천재’로 통하는 할아버지, 선원 출신으로 아직도 로맨틱한 ‘갈퀴’ 할아버지, 여성적인 스티나 할머니, 여전히 미모는 빼어나지만 사회성이 떨어지는 안나그레타 할머니가 총 5명으로 구성된 노인강도단의 멤버들이다.

80줄을 바라보는 노인들은 갈수록 요양소의 처우가 열악해지자 범죄에 나선다. 차라리 사정이 나아 보이는 교도소에 수감되기 위해서다. 이들이 범죄에 성공하는 장면들은 마법 같다.

저자는 정교하게 설계한 추리소설 톱니바퀴처럼 범죄 과정을 교묘하게 그린다. 어수룩한 경찰관들과 수용소의 그악스런 관리인들은 연거푸 노인들에게 당한다. 노익장의 승리, 스웨덴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을 걸로 짐작되는 노인복지의 사각을 비춘 사회소설이다.

소설 중반부터 노인들이 훔친 거액의 행방, 범행 동기가 궁금해진다. 마지막에 모든 궁금증이 후련히 풀리도록 짜놓았다. 거기까지 읽어 나가는 과정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 사실은 시간 남아도는 설 연휴, 도전할 만한 소설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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