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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P가 새 무역 질서로…“드론 같은 신시장 룰도 주도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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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공식 서명식이 열렸다. 이날 존 키 뉴질랜드 총리(가운데)가 서명 명부를 들고 11개국 대표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오클랜드 AP=뉴시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규범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 연내 로드맵을 만들고 가입을 적극 검토하겠다.”

품목 수 기준 95~100% 자유화 추구
“한·미 FTA로 거둔 이득 잃을 수도”
“한국, 태국 다음으로 손해 많아”
정부, 12개국과 개별 협상 가속도

지난 1일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통상교섭 민간자문위원회에서 한 말이다. 이날 주요 안건은 TPP가 한국에 미칠 영향이었다. 참가자들은 관세 차원의 유·불리를 넘어 TPP가 주도할 세계 무역질서에서 한국이 소외당할 수 있다는 우려를 집중 제기했다.

협정문에도 그런 시도가 나타난다. 산업부에 따르면 TPP 회원국들은 신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으면서도 마땅한 국제 공동 규범이 없는 분야에서 역내 회원국에 적용되는 ‘룰’을 도입하고 있다. 전자상거래를 할 때 자국에 서버를 둬야 한다는 규정을 없애기로 했고, 국경 간 개인정보 교류도 보호 장치를 만들어 허용하기로 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무역통상본부장은 “현재 세계 교역에서 관세만큼 영향력이 큰 것이 국가마다 다른 규제 등 비관세 장벽”이라면서 “특히 무인기(드론)와 같이 새롭게 부상하는 시장에 대한 통합된 규정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TPP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출은 당장보다는 장기적 영향이 우려된다. 산업부에 따르면 TPP는 품목 수 기준에서 약 95~100%의 자유화를 추구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유사한 수준이다.

다만 민감한 품목은 발효 즉시 관세를 철폐하는 대신 시간을 두고 서서히 관세를 내리거나 부분적으로만 관세를 없애는 식의 접근법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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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발효 즉시 철폐되는 관세의 비율이 우리와 맺은 FTA에 비해 낮은 경우도 많다. 베트남은 한국과 FTA에선 88%의 철폐율을 보이고 있지만 TPP의 즉시 철폐율은 65%다.

또 자동차의 경우 최대 시장인 미국은 일본에 대해 관세를 25년에 걸쳐 철폐할 예정이지만 한국과의 FTA에선 이미 올 1월부터 무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산업부는 “TPP에 가입한 12개국 중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하면 10개국은 이미 우리와 FTA를 맺은 상태”라면서 “주요국에 대한 한국의 선점 효과는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 역시 선점 효과가 장기간 지속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중·장기적으로 TPP의 관세 철폐율이 높아지고 신규 가입국들이 늘어날 경우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 미국의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TPP의 경제적 효과’라는 제목으로 내놓은 보고서에서 한국은 태국 다음으로 TPP로 손해를 많이 보는 국가로 꼽았다.

TPP가 없었을 때에 비해 한국은 2030년 국내총생산(GDP)이 80억 달러(0.3%) 줄고, 수출은 110억 달러(1%) 손해를 본다. 보고서는 “TPP로 한국은 한·미 FTA로 거둔 이득을 잃게 될 것”이라고 명시했다.

4일 서명된 TPP는 발효까지 2년여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회원국 의회에서 비준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가 비준하지 않더라도 2년 뒤 가입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6개국이 비준하면 발효된다.

정부도 TPP 가입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김학도 산업부 통상교섭실장은 “뉴질랜드·베트남과는 지난해 말 협상을 했고, 미국과는 3월 협상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TPP에 참여하기 위해선 12개국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강인수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실익을 챙기려면 TPP 12개 회원국과의 개별 협상 내용에 공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TPP에 가입하려면 국내에서도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 각종 제도를 TPP가 표방하는 ‘스탠더드’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TPP는 공기업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지원을 막는 조항이 있다.

서진교 본부장은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면 메가 FTA를 통해 공기업 부문의 비효율적인 관행을 개선하고, 구조 개혁을 이루는 계기를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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