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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양육=부모 권리’의 잘못된 관념에 희생되는 아이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친부모에게 폭행당해 숨진 뒤 시신이 유기되는 참혹한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드러나 충격을 준다. 지난달 부천 초등생 시신 훼손 사건에 이어 이번엔 목사 아버지로부터 폭행당해 숨진 여중생의 시신이 백골화될 때까지 집 안에 방치된 사건이 드러났다. 모두 인천 초등생 학대 사건 이후 장기결석생 전수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것이다. 전수조사가 없었다면 영원히 묻혀버릴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잇따르는 부모의 아동학대 시신유기 사건
가정문제로 가출한 아이 돌려보내는 사회
양육에 대한 공동체 감시시스템 만들어야

이 사건들이 충격적인 것은 친부모들의 엽기적인 잔혹성뿐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정 내 자녀의 인권이 얼마나 철저히 소외되고 있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번 여중생은 여러 차례 가출을 했었고 형제들도 가출 상태다. 이런 점만으로도 문제적이고 병리적인 가정임을 드러낸다. 그러나 학교에서도 이런 가정환경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고, 장기결석하자 담임교사가 형식적으로 통화만 하고 가정방문도 하지 않았으며, 학교 측이 오히려 아버지에게 가출신고를 하도록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실종신고를 받고도 수시로 가출하던 아이라는 설명에 대수롭지 않게 처리했다. 숨지기 전날 아이가 다섯 시간 동안 폭행당했다면 그 소리를 들은 이웃들이 있었을 텐데도 신고는 없었다. 몇몇 이웃들은 아이의 집에서 새벽마다 환풍기를 틀어 이상하게 생각했다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무도 이 병리적 가정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이의 가출은 가정이 병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일 수 있다고 말한다. 여성가족부 담당자는 “청소년 가출이 비행성향이나 충동성 때문이라는 항간의 생각과 달리 가정적 문제로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가출 청소년의 경우 상담을 의무화해 가정에 복귀시킬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상담을 강제하는 것은 인권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논리에 밀려 부모에게 그냥 인계되는 경우가 많다. 또 매년 가출신고 건수는 2만 건이 넘지만 이들을 보호하는 쉼터 수용인원은 1250명에 불과하고, 자녀양육은 사적 영역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방치되기도 한다. 이런 사이 아동들이 친부모에게 희생되는 것이다.

최근의 사건들은 ‘자녀의 양육은 부모의 권리’라는 우리 사회 통념의 위험성과 가정양육에도 범사회적 감시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일깨운다. 과거 공동체사회에선 ‘한마을이 아이를 기른다’고 했다. 가정의 양육에도 공동체의 관여와 감시가 따랐다. 그러나 핵가족화가 되며 부모가 전권을 휘두르게 된 것이다. 이제는 이런 사건들을 그때그때 땜질하는 식의 아동학대 대책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문제가정에 대한 강도 높은 정부의 개입과 이웃과 학교 등 공동체의 감시 책임과 같은 공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자녀양육은 가정의 사적 영역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키우는 공적 영역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