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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차는 좌뇌로, 재규어는 우뇌로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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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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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칼럼 재규어 수석 디자이너가 25일 ‘뉴 XJ’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뉴 XJ는 영국 명차의 전통을 계승했다”고 설명했다. [사진 재규어랜드로버]

‘명차’로 불리는 세단은 크게 둘로 나뉜다. ‘폭발적인 성능을 우선하는 차’와 ‘매혹적인 디자인을 중시하는 차’다. 둘 중 하나도 잡지 못하고 묻히는 브랜드도 허다하다. 1922년 창립 때부터 이 두 마리 토끼를 끝까지 물고 늘어진 맹수같은 세단이 영국의 명차 ‘재규어’다.

재규어 디자인 사령탑 이언 칼럼
“수학에 기반한 독일 브랜드 비해
우리는 창의적·예술적인 차 추구
전통을 재해석해야 진정한 명품”

그런 재규어의 디자인을 99년부터 총괄한 인물이 이언 칼럼(62) 재규어 수석 디자이너다. 그는 폴크스바겐·아우디 디자인 총괄을 거쳐 기아차로 옮긴 피터 슈라이어(63) 사장, BMW 총괄 디자이너를 지낸 크리스 뱅글(60)과 함께 ‘자동차 3대 디자이너’로 꼽힌다.

 그가 2013년 이후 두번 째로 한국을 방문했다. 재규어의 플래그십 세단인 XJ의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모델 ‘뉴 XJ’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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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뉴 XJ

그는 2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뉴 XJ 국내 출시 행사에서 “단순히 이전 모델을 복사하는 건 ‘헤리티지’(heritage·전통)가 아니다”며 “전통의 가치를 살려 재해석하는 게 재규어를 비롯한 명차 디자인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수십년 간 재규어를 상징해 온 동그란 모양의 헤드라이트 4개와 엔진 보닛 위로 튀어오르는 듯한 모양의 재규어 엠블럼을 없앤 디자이너다. 각각 재규어의 영문 앞글자 ‘J’를 상징하는 모양의 헤드라이트 2개, 그릴 한가운데 박힌 재규어 엠블럼으로 바꿨다.

“재규어답지 않은 디자인이란 지적이 나온다”는 의견에 대해 그는 “디자인은 시대 발전에 부응해야 한다. 특히 ‘J’를 형상화한 헤드라이트는 진보한 기술을 보여주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라고 답했다. 벤츠·BMW·아우디 같은 독일 경쟁차 브랜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독일 브랜드는 탄탄한 수학적인 기반에서 좋은 차를 만들죠. 독일 브랜드가 ‘좌뇌’라면, 재규어는 ‘우뇌’입니다. 다시말해 재규어는 (경쟁차보다) 좀 더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차입니다.”

 디자인은 자동차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다. 기술력이 상향 평준화한 요즘은 더욱 그렇다. 기술적으로 완벽하고 성능이 뛰어나더라도 디자인이 엉망이면 소비자가 외면한다. 그는 “자동차 디자이너는 소비자의 감성을 잘 잡아야 한다. 좋은 자동차 디자인은 보는 사람을 흥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비 규제나 환경 법규 등 창의적인 디자인을 제약하는 외부 요소에 대해선 “디자이너는 양보하는 사람이 아니다”며 “어떻게 하면 부정적인 외부 요소를 더 잘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한 뒤 최종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겐 “학생 시절 디자인 뿐 아니라 수학·공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피터 슈라이어에 대해선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좋은 친구”라며 “현대·기아차에서 꾸준히 좋은 성과를 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24일 방한한 그는 26일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고 27일 출국한다.

 뉴 XJ는 8단 자동변속기를 달았다. 차체 길이, 엔진, 구동방식에 따라 10개 라인업으로 구성했다. 차체 길이 기준으로 스탠더드 휠 베이스(SWB), 롱 휠 베이스(LWB)로 나뉜다. 엔진은 2.0L I4, 3.0L V6 수퍼차저, 5.0L V8 수퍼차저 가솔린과 3.0L V6 터보 디젤로 구분했다.

새로 적용한 3.0L V6 터보디젤 엔진 기준으로 최고 출력 300마력, 최대 토크 71.4㎏f·m의 성능을 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이를 때까지 4.6~7.9초가 걸린다. 구동 방식은 전륜·사륜으로 나뉜다. 판매 가격은 1억950만~2억2670만원.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이언 칼럼=1954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다. 글래스고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영국왕립예술대(Royal College of Art)에서 자동차 디자인 석사 학위를 받았다. 79년 포드 디자이너로 출발해 TWR·애스턴 마틴·마쓰다를 거쳤다.

99년부터 재규어 디자인 총괄을 맡고 있다. 유년 시절 자동차 딜러에게 신차 브로슈어를 요청해 방을 도배할 정도로 자동차 광이었다. 14세 때 재규어에 자동차 디자인을 보내 격려 답변을 받은 일화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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