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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골리앗·기중기… 환호는 짧고 시름은 길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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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호 12면

“선생님은 언제부터 몸이 커지는 증세가 나타났나요?”


“태어났을 땐 엄청 작았대요. 할머니가 ‘손녀딸이 너무 작아서 걱정’이라며 백일기도를 드렸다고 해요. 다섯 살부터 키가 쑥쑥 크고 몸도 커지기 시작했죠. 중학교 2학년 때 1m85㎝가 넘었어요. 아버지(1m65㎝) 어머니(1m63㎝)도 보통 체격이셨고, 남동생(1m78㎝)도 평균보다 조금 큰 정도죠.”


“본인이 말단비대증이라는 걸 언제 아셨나요?”


“2002년 중앙일보에 제 기사가 나고, KBS ‘추적60분’팀에서 정밀진단을 해 보자고 해서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을 하고서야 알았죠. 1987년에 뇌종양 수술을 받았는데 그 후유증인 줄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마음이 많이 힘드셨겠어요.”


“거인병 진단을 받고 사흘 밤낮을 울었어요. 감독·코치님들은 왜 병원에 가 보자는 얘기 한 번 안 하셨나, 키 크다고 이용만 해 먹고. 지금도 묻고 싶어요. 왜 나를 그렇게 학대했는지. 증상이 심해져 체중이 130㎏까지 나갔을 때는 살찐다고 물도 못 먹게 했다니까요.”


지난 20일 서울 반포동 가톨릭대 성의회관 4층 강의실. 속칭 ‘거인병’으로 불리는 말단비대증을 앓고 있는 농구 스타 김영희(53)씨가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의대 본과 2학년이 수강하는 ‘인문-사회 Ⅲ(환자/의료인의 고통과 치유)’ 시간. 이날은 김씨의 주치의인 유순집 교수가 ‘인문사회적 시선으로 바라본 내분비질환’을 주제로 강의했다.

말단비대증을 앓고 있는 김영희씨가 지난 20일 가톨릭의대 수업에 참여한 뒤 기념촬영을 했다. 최정동 기자

강의 후반부에 유 교수는 김씨를 강단으로 모셨다. “김영희 선수는 1984년 LA 올림픽 여자농구 은메달의 주역이고, 10년간 국가대표를 한 스타입니다. 말단비대증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앞장서고 계십니다. 먼 길을 와 주신 김영희 선수에게 힘찬 박수를 보냅시다.”


의자에 앉은 김씨가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는 경기도 부천의 단칸방에서 혼자 산다. 말단비대증은 성장호르몬 이상으로 인해 신체와 장기가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병이다. 코·입·손발 등 신체 끝부분이 더 심하게 커진다고 해서 말단(末端)비대증이다. 현재 키 2m5㎝인 김씨는 지금도 심장 등 장기가 커지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주사를 맞는데 맞고 나면 힘들어서 잠을 못 잔다고 한다. 한 대 280만원 하는 주사 비용은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농구를 하던 부산 동주여중 2학년 김영희는 한 실업배구팀 코치의 눈에 띄어 서울로 ‘보쌈’을 당한다. 배구 기본기를 가르치던 코치들이 하루는 김영희를 경찰병원에 데려가 정밀검진을 받게 했다. 의사가 “이 아이는 그냥 놔 두면 앞으로 얼마나 더 클지 모릅니다. 그런데 수술을 받으면 성장을 멈추게 될 겁니다”고 말했다는 게 김씨의 증언이다. 코치들은 이후 김영희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운동 잘해서 좋긴 한데…이건 여자가 아니야’


몇 달 뒤 김영희는 다시 동주여중으로 잡혀 들어와 농구를 계속 하게 된다. 당시 태평양화학과 한국화장품의 라이벌 대결이 치열했다. 박찬숙(1m90㎝)을 스카우트한 태평양화학에 일방적으로 밀리던 한국화장품은 ‘박찬숙 대항마’로 김영희를 점찍고 서울 숭의여고에 입학시킨다. 2m2㎝까지 자란 김영희를 앞세운 숭의여고는 실업팀을 쉽게 꺾었다.


“그때가 최고 전성기였죠. 그런데 거울로 내 몸과 얼굴을 보면 이건 여자가 아닌 거야. 그 뒤로 3년 동안은 거울을 안 봤어요. ‘운동을 잘하라고 하늘에서 이런 몸을 준 모양이다’고 속으로 정리를 했죠.”


한국화장품에 입단한 ‘코끼리 센터’ 김영희는 1984년 농구대잔치에서 태평양화학을 꺾고 팀에 우승을 안긴다. 자신은 득점왕·리바운드왕 등 5관왕에 올랐다. 화려한 시절도 잠시, 거인병이 진행되면서 김영희는 87년 결국 쓰러져 뇌종양 수술을 받는다. 은퇴한 그는 합숙소를 나와 세상과 맞닥뜨려야 했다. 사람들은 등 뒤에서 수군거렸다. “아이고 엄청 크네. 저게 남자야 여자야?”


그 후 김영희는 서울 제기동 집에만 틀어박혔다. 하루 종일 흘러가는 구름과 얘기를 나눴고, 독한 양주를 병째 마시고 밤에는 속이 아파 데굴데굴 굴렀다. 어머니가 유일한 친구였다. 절에도 같이 다니고, 사람 없는 새벽에 고려대 뒷산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랬던 어머니가 59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마저 2년 뒤 암으로 돌아가셨다. 김영희는 4년간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삶을 놓아버리기 위해 7개월간 곡기를 끊기도 했다. “누나마저 가면 난 어떻게 살아”라며 울부짖는 남동생과 친어머니처럼 돌봐준 한 지인의 정성에 그는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미움도 원망도 놓아버리기로 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거인 아줌마”라며 놀리던 꼬맹이들은 사탕과 과자로 포섭했고, 호박죽을 쒀 어르신들을 대접했다. 요즘은 난치병 아이들을 돕기 위해 농구공과 후원금을 모으고 있다.


스포츠에서 키가 큰 건 장점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큰 사람은 동작이 굼뜨거나 기본기가 떨어진다. 또한 거인 선수들은 남모르는 질병에 시달리거나 부상으로 쓸쓸하게 은퇴하는 경우도 많다.


씨름 천하장사를 거쳐 격투기 선수로 뛰고 있는 최홍만(36·2m17㎝)도 안타까운 경우다. 그는 2008년 말단비대증의 원인이 되는 뇌하수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 후 탄탄한 근육질 몸매와 역동적인 기술이 점점 사그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사기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김영희씨는 “예전에 최홍만 선수와 통화한 적이 있어요. ‘빨리 병원에 가서 정밀진단 받아 봐라. 나처럼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는 신세 되지 말고’라며 충고해 줬거든요. 그 뒤에 수술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라며 안타까워했다.


의술 좋아져 심장수술 하고도 뛸 수 있어거인 선수들을 괴롭히는 또 다른 복병이 있다. 마르판증후군이다. 염색체 이상으로 인해 혈관이 가늘어지면서 심장마비를 일으키게 한다. 키가 크고 마른 농구·배구 선수에게 잘 나타난다. 배구선수 김병선(2m)과 강두태(1m97㎝)가 마르판증후군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프로배구 하경민(34·2m1㎝)도 심장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회복이 잘돼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마르판증후군을 이겨내고 어린이 농구교실에서 봉사하고 있는 한기범씨 [사진 한기범희망나눔]

80~90년대 농구 최장신 센터로 사랑받았던 한기범(52·2m7㎝)은 마르판증후군으로 아버지와 남동생을 잃었다. 자신도 2000년과 2008년 심장 수술을 받았다. 한기범나눔재단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요즘은 의술이 좋아져 수술을 받으면 대부분 완치돼요. 어제 농구교실에서 연습게임을 8쿼터나 뛰었어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요즘 운동 선수들은 키가 커도 몸매에 균형이 잡히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아서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러나 혹독한 훈련, 호기심 어린 시선, 남 모를 병마로 힘들어하다 쓸쓸히 경기장을 떠난 ‘골리앗’ ‘기중기’ ‘코끼리’들이 있었다.


한기범 대표와 김영희씨의 호소는 똑같았다. “국민에게 즐거움을 주고, 국위를 선양한 거인 선수들이 쓸쓸한 말년을 맞지 않도록 정부나 대한체육회에서 최소한의 도움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정영재 스포츠 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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