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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들고 글씨 쓰면서 놀면, 새로운 세계 열리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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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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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이마다 써주는 글이 ‘심화평(心和平)’이다. 마음의 평화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정성껏 붓글씨체로 적어준다. 중학교 시절부터 서예 삼매에 빠졌으나 서예가가 되는 대신 서예 애호가이자 연구자가 되었다.

『서예가 보인다』 펴낸 김종헌씨
“앞으로 한글 서예 대세 이룰 것”

강원도 춘천시 석사동에서 북카페 ‘피스 오브 마인드(Peace of Mind)’의 북 마스터로 일하는 김종헌(69·사진)씨는 “평생 나를 기쁘게 해준 서예를 널리 알리는 길라잡이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제 글씨 스승인 소지(昭志) 강창원 선생이 제게 거량(居亮)이란 호를 주시면서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백거이처럼 글 잘 짓고 삼국시대 촉한의 전략가 제갈량처럼 총명하라고 북돋아주셨죠. 붓을 들고 글씨를 쓰면서 놀면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거량이 최근 미진사에서 펴낸 『서예가 보인다』는 이 소임을 실천하는 두 번째 책이다.

2007년 출간해 화제를 모은 『추사를 넘어-붓에 살고 붓에 죽은 서예가들의 이야기』(푸른역사)가 그가 흠모한 일곱 서예가들의 삶과 작품 평전이었다면, 『서예가 보인다』는 서예 교과서라 할 수 있다.

후배이자 디자이너인 윤은섭씨와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서예 역사와 작품, 서예가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렸다. 한국과 중국 서예의 흐름을 폭넓게 아우르고 있어 누구나 쉽게 서예에 입문할 수 있다.

 “저는 앞으로 한글서예가 대세를 이루고 중요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엊그제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이 쓴 여러 가지 실험적인 민체(民體)는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소주 등의 로고로 쓰이면서 캘리그라피 붐을 일으킨 계기가 되지 않았습니까. 판본체·궁체·서간체를 잇는 창조적인 한글서예가 많이 나와서 현대 서예의 새 길을 열어야 합니다.”

 다각도로 퍼져나가는 캘리그라피도 전통 서예에 기초한다면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정현숙 열화당책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이 감수한 한국과 중국서예사 연표, 꼼꼼하게 정리한 참고문헌은 독자들이 유념해서 보아주었으면 하고 열심히 만든 이 책의 보물이다.

 “대기업(남영비비안) 최고경영자 자리에도 올라봤지만 공부하며 노는 게 인생의 최고 재미이지 싶어요. ”

 거량이 내민 명함에는 그가 이미 쓴 책 『빵굽는 아내와 CEO 남편의 전원카페』 등 4권의 표지사진과 함께 이런 글귀가 적혀있었다. ‘은퇴와 인생2막-마음의 평화’.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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