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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세대는 모를거야, 인화지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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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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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넘 포토스 소속 마크 리부의 사진 ‘에펠탑 페인트공’(중앙). 그 옆으로 최종 컷을 골라내기 이전의 다른 컷들이 보인다. 파리, 프랑스, 1953 ©마크 리부 / 매그넘 포토스. [사진 한미사진미술관]

시커먼 종이에 꼬마 사진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필름을 쓰지 않는 디지털 카메라 시대에는 추억만 남은 밀착인화지(contact sheets)다.

‘매그넘 콘택트 시트’ 사진전
필름사진 완성작 고르기 위한 도구
65명 작품 160여 점 시대별 전시

밀착인화지는 한 롤의 필름을 빛을 통해 인화하거나 여러 장의 네거티브 필름을 순서대로 인화해 사진가가 자기가 찍은 내용물을 처음 확인하는 도구였다. 완성작을 고르기 위한 일종의 스케치북이자 비밀노트인 셈이다.

사진가와 편집자는 ‘결정적 순간’이 담긴 단 한 장을 건지기 위해 수십 장이 촘촘히 박힌 밀착인화지를 루페(확대경)로 들여다보며 색연필로 체크했다.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매그넘 콘택트 시트’는 이 밀착인화지의 기능과 그 전후 맥락을 되짚어보는 전시다.

국제 보도사진가 단체인 ‘매그넘 포토스’ 소속 사진가 65명이 193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작업한 밀착인화지 70여 점과 그 최종 결과물 94점, 이들이 인쇄된 잡지와 현장 노트 등을 시대별로 내놓았다.

 매그넘 포토스 창립 멤버였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의 한마디는 이 전시의 의의를 웅변한다. “밀착인화지는 심리분석학자의 사례집과 비슷한 데가 있다.(…) 밀착인화지로부터 좋은 사진을 골라내는 것은 마치 와인창고에 내려가 명품 와인을 찾아내 마개를 따는 것과 같다.”

르네 뷔리는 “(우리가 보낸 밀착인화지는) 편집자가 휘갈겨 쓴 빨간색 표시로 뒤덮이기 일쑤였다”고 회고했다.

 1953년 마크 리부가 찍은 ‘에펠탑 페인트공’은 공중곡예에 가까운 칠쟁이의 한 순간을 36장 사진중에서 골라냈다. 최고의 사진은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은 자신의 밀착인화지가 공개되는 것을 꺼려했다.

크리스텐 루벤이 말했듯 “밀착인화지는 경험의 일기장이며, 실수와 잘못, 막다른 길에 다다른 상황을 기록한 사적인 도구”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십 년이 지난 오늘, 이 자료들이 후대에 전해주는 강력한 역사적 교훈과 메시지는 선물과도 같다.

  사진의 기술적 작업 과정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오늘, 예술적 유물이 된 밀착인화지 앞에서 그의 말은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전시는 4월 16일까지, 매주 일요일 휴관. 02-418-1315.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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