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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선거 「다짐과 망각」 되풀이말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건국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무려 열한차례의 국회의원선거, 다섯차례의 대통령직접선거, 네차례의 통일주체국민회의선거, 한차례의 대통령선거인단선거, 그밖에 지방의회 의원선거, 그리고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등 실로 다양한 선거와 투표경험을 쌓아왔다. 관계자들은 그때마다 『이번 선거야말로 국운을 좌우하는 중대한선거』라고 주장하면서 유권자의 빠짐없는 투표와 공명선거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그결과는 언제나 배신적이어서 6대국회 이후에는 번번이 20여%의 기권율과 부정·불법의 후유증을 남기곤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 또다시 12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의의를 중요시하면서 똑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 23일 발표된 내무·법무부장관 공동명의의 담화문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담화문은 거의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들은 모두 이번의 총선을 민주주의가 이땅에 정착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주장하면서 「바르고, 깨끗하고, 명랑한 선거」가 되도록 호소하고 있다. 즉 ①국민은 누구를 막론하고 신성한 주권행사 대열에 빠짐없이 참석해줄 것과 ②입후보자는 선거법에 규정된 사항을 철저히 준수하여 선동, 인신공격, 명예훼손과 흑색선전 등을 삼가주도록 요청하고 있다.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일반국민도 매번 그점에 관심을 쏟아왔다. 그러나 공명선거를 선거전에는 떠들썩하게 외쳐대고 선거가 끝나면 힘없이 잊어버리는 「다짐과 망각」이 40년간을 되풀이하여 오는 가운데 이번에도 우리는 「12대총선만은」하고 다시 한번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20일이면 선거일이 다가온다. 4년만에 던져보는 귀중한 한표다. 「룻소」는 영국선거를 지켜보면서 『아, 가엾은 영국인이여, 그대들은 4년에 한번 투표할 때 비로소 자유인이 되고 투표가 끝나는 다음 순간부터 다시 노예의 쇠사슬에 얽어 매이는도다』하고 한탄했으나 우리는 비록 4년에 한번이나마 선거를 통해서 조금은 더 자유로와지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선거를 통해서 국민의 단합된 민주역량을 보여주고 국민의 정치적 성숙을 과시해야 한다. 『국민은 언제나 그의 수준에 걸맞는 정부를 갖게 되어있다』는 말은 비록 현상호도의 궤변이기는 해도 마음에 새겨둘 가치는 있다.
여야 각당은 벌써부터 상대방의 관권개입, 선심행정, 금품공세, 흑색선전을 비난하면서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결과여하에 따라 어떠한 후유증이 터져 나올지도 모른다. 특히 12대국회는 정치적으로 매우 큰의미를 갖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현대통령임기중에 지방자치제가 실시(1987)되도록 약속되어 있고 현직 대통령의 임기만료로 인한 평화적 정권교체(1988)가 공약되어 있다. 이를 둘러싼 개헌논쟁이 개원벽두부터 포문을 열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총선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굳이 과장되게 말한다면 입후보자들이 개별적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기보다 도리어 이땅의 민주정치가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것이다.
민정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서 지난 4년간의 치적에 대하여 정정당당하게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민정당에 있어 최초의 국민적 심판이며 유권자에게 있어서는 제5공화국의 집권당을 향한 최초의 합법적인 민주역량의 발휘가 되는 것이다.
선거는 본질적인 내용과 힘을 담은 행위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12대총선을 통해서 국민앞에 입증돼야 한다.
선거는 이기기 위한 싸움이다. 지기 위해서 입후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지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그러므로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입후보자는 올바르게 지는 법도 함께 배워 두어야한다.
비굴하게 이긴 자는 그의 승리를 부끄러워하고 눈물의 잔을 들어야하되, 공명정대하게 진 자는 그의 패배에 긍지를 느끼고 회심의 잔을 들어야한다. 이것이 전제되지 아니한 선거는 도리어 후환을 남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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