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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시 메르스가 온다면 누가 막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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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에스더 기자 중앙일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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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스더
사회부문 기자

“만약 오늘 당장 새로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환자가 국내에 입국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감염병을 막을 실무라인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니까요.”

 지난 14일 감사원의 메르스 사태 관련 감사 결과 발표 이후 보건복지부 공무원 A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감사원 감사로 질병관리본부(질본) 본부장을 비롯해 감염병관리센터장 등 국장 2명, 역학조사과장을 포함한 주무 과장 2명 등 관계자 9명이 해임·강등·정직 등 중징계를 받게 됐다. 해외 감염병을 감시하고 유사시에 사태 확산을 막아야 할 실무라인이 초토화된 셈이다.

 지난해 메르스 방역 실패로 186명이 감염됐고, 이 중 38명이 숨졌다. 몇 달간 온 국민이 불안에 떨며 위축된 일상을 보냈다. 이들이 최선을 다해 공무를 수행했더라도 비극적인 결과가 따른 이상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책임자를 가려내 징계하는 건 불가피하다.

 하지만 가장 책임이 무거운 자리에 있던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징계를 면했다. 문 전 장관은 메르스 방역 실패를 이끈 패장(敗將) 아닌가. 그는 지난해 6월 7일 메르스 환자가 거쳐간 병원 이름을 공개하기 직전까지도 “병원 정보를 공개할 근거가 없다”며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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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그런데도 감사원은 “장관의 지시를 실무자들이 따르지 않았으며, 실무자들이 장관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며 문 전 장관에게 면죄부를 줬다. 보건소 7급 주사보에 대해선 “2년 전 받은 메르스 홍보물을 배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 의견을 낸 감사원의 엄정한 잣대가 문 전 장관에게만 비켜간 것이다. 이렇게 감사원이 실무자만 때리는 사이 국내 방역망은 길목부터 안방까지 구멍이 뻥 뚫리게 됐다.

 보름째 공석인 인천공항검역소장 자리는 이번 징계 절차가 끝날 때까지 채우기 힘든 상황이다. 1급 등 고위공무원 3명이 징계 대상이 되면서 소장 자리에 보낼 사람이 없어졌다. 나머지 실무라인도 상당 기간 공석 사태가 예상된다. 인사혁신처가 징계위원회를 열고 징계 여부를 의결할 때까지는 앞으로 최소 2~3개월이 걸린다. 그 과정에서 중징계자들은 대기발령(직위해제) 상태로 업무를 볼 수 없게 된다. 일시적인 공석이라 다른 사람을 앉히지도 못한다. 바로 아래 부하직원이 ‘직무대리’를 맡는다.

 만약 당사자가 징계 수위에 수긍하지 못하고 소청심사·행정소송 등 이의를 제기할 경우 결론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감사원은 징계를 하더라도 이러한 현실을 감안했어야 한다. 메르스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감사원이 조사를 시작한 지난해 9월 10일 이후 오늘까지 국내에 들어온 메르스 의심 증상자들이 80명을 헤아린다.

이에스더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