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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독자투고] ‘혼전순결’이라는 표현 자체도 문제다

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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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TONG 기사를 챙겨보고는 하는데, ‘혼전순결 토론’을 다룬 기사(10대의 혼전순결 끝장토론)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토론 중 청소년의 낙태와 임신이 증가하는 것은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는 경향과 성평등을 빙자한 지나친 개방 때문이라고 논한 내용 때문이었다. 전에 이 주제로 논문을 쓴 적이 있는데, 당시 조사했던 내용에 따르면 원인을 그렇게 볼 수는 없다.

보건복지부 2015 청소년건강행태온라인조사 결과로 나타난 한국 청소년 첫 성관계 연령은 남성 13.1세, 여성 13.5세다. 그럼에도 교육부가 지난해 배포한 성교육 표준안에는 피임 방법을 접할 수 있게 해주는 현실적인 성교육이 아니라, ‘그냥 위험하니까, 어른 되어서 성관계를 가지든가 해라’라는 무책임한 태도가 묻어난다. 논문을 준비하면서 지난해 10월 청소년 105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설문조사에서도 성교육 만족도는 중학생 12%, 고등학생 8%로 매우 낮았다.

‘사람을 안을 때 느낌이 어떤가요?’로 시작하는 네덜란드의 성교육 [사진=PBS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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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안을 때 느낌이 어떤가요?’로 시작하는 네덜란드의 성교육 [사진=PBS 영상 캡처]

다른 나라는 어떨까. 덴마크와 네덜란드는 성교육의 모범 국가라고 불린다.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낙태율과 10대 임신율이 가장 낮은 나라다. 두 나라는 만 4세부터 성교육을 시작한다. 유치원 때부터 토론식 성교육을 실시하는데, ‘사람을 안을 때 느낌이 어떤가요?’로 긴 성교육 기간의 첫 발을 딛는다. Kindergarten(유치원)부터 de hogere middelbare school(고등학교)까지 꼼꼼히 실시하게 되는데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시기는 3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다. 이 기간은 에너지가 넘치고 성욕이 늘어나서 ‘Spring Fever’(봄 열병) 기간이라고 불린다. 국가가 주도하는 개방적이고, 상세한 조기 성교육은 청소년 임신 연령을 12.2세에서 17.7세로 늦추고, 낙태·임산부 사망·성병 등을 줄이는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We don't teach sex education, we teach 'sexuality education'’을 외치는 네덜란드의 피임약 및 피임도구 이용률은 90%에 이른다. 성병 발병률은 미국의 약 20% 수준에 불과하다.

주목할 만한 또 다른 나라는 덴마크다. 덴마크는 70년대부터 성교육을 의무화했다. 담임교사가 직접 성교육 전문 강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연간 약 4주에 걸쳐 주당 3시간씩 진행된다. 교사는 성교에 따르는 책임, 피임법의 종류 및 방법을 가르친다. 그러나 덴마크 성교육의 더욱 놀랄 만한 장면은 따로 있다. 초등생 이상부터 학교 안에 주치의와 청소년 피임클리닉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불임시술도 도와주고 피임에 대해 상담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렇게 열린 정책에는 덴마크의 열린 마음이 반영되어있다. 덴마크의 툐료세 슬롯프 애프터스콜레(Tølløse Slots Efterskole) 학교의 애네 페버안슨 교장이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오마이뉴스, 2015. 9. 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41490&isPc=true)에서 이렇게 말했다. “학교의 규율이 다 정해져있어서 담배, 마약, 술은 당연히 금지하고 있지만 어딜 가든 남녀 커플이 있고 자연스럽게 키스도 자주 한다. 같은 방에서 함께 자는 것은 금기하고 있지만, 남들을 방해하지 않는 한 서로 성관계를 가져도 된다.” 청소년과 성인을 동등히 바라보는 시각과 성에 대한 열린 가치관,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한 열린 성교육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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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순결이란 말은 ‘성관계를 하면 순결을 잃는다, 몸이 더렵혀지는 것이다’라는 의미로 이성을 성적 도구로 본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표현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혼전순결이 아니라, '혼후관계주의'라고 쓴다. 혼후관계주의는 성문제 증가를 막는 가치도 아니고, 안 지킨다고 해서 성문제가 심각해지는 개념도 아니다. (물론 종교적인 가치관으로 인해 혼후관계주의를 주장한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뭐라고 논할 권리는 없다.) 모든 이에겐 성적자기결정권이 있다. 성에 대한 책임감을 배운다면 성에 대한 개방된 태도는 오히려 권장되어야 하는 소중한 가치다. 알면 알수록, 문제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성적인 주제를 부끄럽게 여기는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혼후관계주의라는 말도 낯설 수밖에 없고, 두 나라의 열린 성교육 역시 위험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르면 모를수록 성 관련 지식은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그 왜곡 때문에 성문제가 증가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혼후관계주의라는 특정 가치가 소홀히 여겨지기 때문에 성 관련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무턱대고 의심하는 시각은 문제가 있다.

글=이지윤(이화여자외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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