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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벤처업계에 부는 86 신드롬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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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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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진 네이버 의장, 김범수 카카오 의장 등 한국의 벤처 붐을 일으킨 1세대 대표주자들은
1986년에 대학에 입학한 86학번들이다.

벤처 1세대는 86학번, 2세대는 86년생!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현재 한국 스타트업 붐을 이어나가는 이들은 1986년생이다. ‘86’은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숫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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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사법시험 준비를 위해서였다. 다행히 군 입대를 면제받아 남들보다 시간적 여유도 있었다. 하루종일 의자에 딱 붙어 앉아 22살 때부터 시험을 봤다. 사법시험은 그에게 인생의 전부였다. 3번째 1차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어느 날, 고시원 휴게실에서 별 생각 없이 방송 뉴스를 보다가 출퇴근 시간에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는 광역버스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의 머리에 번뜩이는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다. 부족한 버스를 대체할 수 있는 전세버스를 구하고, 이를 이용할 사람들에게 월 고정 버스비를 받으면 될 것 아닌가!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당장 버스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사업의 타당성을 알아봤다.

내친김에 직장인 커뮤니티에도 아이디어를 올렸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창업만 하면 당장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험을 1개월 앞두고 고시원을 나와 창업에 도전했다. 하지만 창업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전세버스 사업을 하려면 당장 운수사업법에 걸리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창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요즘 모바일 식권 서비스 ‘식권대장’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조정호(30) 대표다.

조정호 대표처럼 사법고시나 취직 대신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특히 2016년 만 서른이 되는 1986년생 창업가들이 요즘 제2의 벤처붐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기업용 메신저 서비스 ‘잔디’ 개발사 토스랩의 다니엘 챈 대표, 실리콘밸리에 본사가 있는 VC 알토스벤처스의 박희은 수석심사역, 고려대 경영학과 05학번 동기인 마이리얼트립의 이동건 대표와 백민서 부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아이디인큐 김동호 대표, 다노 정범윤 공동대표, 맵씨 장윤필 대표, 비카인드 김동준 대표, 커무브 원준호 대표, 미팩토리 이창혁 대표, 오스퀘어 노대영 대표, 슛포러브 김동준 대표, 다이어트노트 정범윤 대표, 더니트컴퍼니 권오경 대표 등이 대표적인 86년생 창업가로 꼽힌다. 모두가 스타트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한국의 스타트업 붐 2세대다.

벤처 붐 1세대로 꼽히는 86학번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서울대 산업공학과), 김정주 NXC 회장(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그레택 창업자 배인식 전 대표(국민대 금속공학과)가 벤처 붐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PC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는 것과 인터넷의 미래 가능성을 먼저 알았기 때문이다. 배인식 전 대표는 “창업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당시 86학번들은 PC라는 무기를 가지고 어린 나이에도 세상과 대결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86학번의 무기가 PC였다면, 1986년생 스타트업 창업가들의 무기는 스마트폰이다. 2009년 아이폰 3GS가 처음으로 한국에 상륙했을 때, 이들은 스마트폰이 사회를 바꿀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다. 이와 관련해 박희은 수석심사역은 “86년생들이 대학교 4학년일 때, 혹은 신입사원일 때 스마트폰이 처음으로 나왔다. 스마트폰은 모두가 처음 접하는 것이라서 낮은 역량으로도 선발자 이익을 누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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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보면서 사회의 변화를 느꼈던 86년생 창업자들은 마치 인터넷을 보고 미래를 내다봤던 86학번 창업자들과 오버랩 된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페이스북 마케팅을 시도한 스타트업으로 요즘 돼지코팩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미팩토리 이창혁 대표는 “우리 사업이 커질 수 있던 것은 SNS라는 뉴미디어 마케팅 툴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생태계가 이들에게 창업과 성공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불안정한 취업 대신 창업 선택

86년생 창업자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창업에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미팩토리 이창혁 대표와 다이어트에 대한 정보를 모아놓은 페이지 다이어트노트를 창업한 정범윤 대표는 20대 중반에 창업에 뛰어들었다. 정 대표는 “다이어트노트가 첫 창업이 아니다. 24살에 로컬광고사업을 시작했지만 실패했다. 실패를 경험한 것이 나의 자산이 됐다”고 설명했다. 회계사를 꿈꾸고 미국 미시간주립대학에 유학을 했던 이창혁 대표도 학교를 다닐 때 이미 플렉스파워라는 스포츠크림 사업을 시작한 경험이 있다. 이 대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 젊었을 때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희은 수석심사역은 “아버지 세대들이 IMF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86년생들은 고용의 불안정성을 몸소 느꼈던 것 같다. 회사에 취직하는 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스타트업 붐을 이끌어가고 있는 중국도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창업 9개월 만에 1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한 유아용품 전자상거래 사이트 베이베이왕 창업자는 바우허우 세대인 장량룬과 커쭌야 오, 위자제 등이 주축이 되어 이끌고 있다. 이들은 모두 86년생 동업자들이다.

1986년생 스타트업 창업가들의 무기는 스마트폰인가?

한국에 출시된 스마트폰을 보면서 사회의 변화를 느꼈다. 스마트폰 덕분에 사업의 기회를 많이 얻었던 것 같다.

86년생들이 스타트업을 대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시행착오를 일찍 경험했기 때문 아닐까. 우리들은 보통 20대 중후반에 스타트업에 도전했다. 실패를 미리 맛본 셈이다. 86년생 스타트업 창업가의 자산은 실패를 통해 쌓은 내공인 것 같다.

86년생 스타트업 창업가들의 모임도 있나.

창업을 한 후에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이상하게도 동갑이 많았다. 유치원 때부터 친했던 친구가 창업한 것을 알고, 동갑내기들끼리 모임을 만들었다. 이창혁 미팩토리 대표, 정범윤 다이어트노트 대표 등 7명의 동갑내기 창업가들이 시간을 내서 한 번씩 모인다.

식권대장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온 것인가.

전세버스 사업은 운수사업법에 걸려 시도도 못했다. 모바일 상품권 사업도 수익 모델을 찾기 어려워 실패했다. 상품권 사업을 추진하는 영업을 하면서 식권을 예전처럼 장부로 관리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모바일 식권 사업을 하면 되겠다 싶더라. 모바일 상품권 사업은 힘들다고 하던 VC도 식권사업을 한다고 하니 투자를 하더라. 식권대장 사업까지 오는 데 4년이 걸렸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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