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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경영 판단에 대한 배임죄 어떻게 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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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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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의 초점

최근 경영상의 판단을 배임죄로 처벌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최근 해외 자원개발 투자 과정에서 배임죄로 기소됐던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에게 무죄가 선고되는 등 법원에서도 배임죄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분위기도 있고, 검찰의 기소도 신중해지고 있다. 이에 법조계 일각에선 배임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다른 일각에선 배임죄를 폐지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양쪽 입장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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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자 배임에 면죄부 줘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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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열
변호사(법무법인 문무 대표)

최근 재계에서 배임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배임죄의 처벌 기준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추상적이어서 기업 경영자가 사업을 추진한 결과 손해가 발생하면 배임죄로 처벌을 받기 때문에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기업의 경영진이 배임죄를 통해 교묘하게 이익을 취득하고도 면죄부를 받으려는 일방적인 주장이고, 그로 인해 피해를 본 투자자나 주주들의 이익 보호를 위해서라도 배임죄는 당연히 유지돼야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

형법 제355조 제2항(배임죄)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징역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을 하고 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특정재산범죄의 가중처벌)을 통해선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일 때 가중처벌하고 있다.

위와 같이 우리 형법상 배임죄의 구성 요건은 매우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다. 배임죄는 형법전이 제정될 당시부터 존재했던 죄명이고, 대륙법계를 따르는 독일·일본의 경우 배임죄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배임죄 규정은 물론이고 회사재산남용죄를 두어 가중처벌하고 있다. 또한 수많은 대법원 판례가 형성돼 배임죄의 성립 여부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배임죄의 위헌 여부에 대해 배임죄를 처벌하는 법률의 전체적인 내용과 조문의 의미를 살펴볼 때, ‘의미를 충분히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대법원이 경영상 판단에 대한 법리를 수용해 배임죄의 고의성 판단을 할 때 엄격한 해석 기준을 적용하고 있어 과잉 입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하여 배임죄를 처벌하는 규정은 합헌이라고 명확히 했다.

배임죄 폐지를 주장하는 측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는 기업의 경영진이 손해가 발생할 위험을 알고 투자했다가 결국 손해가 발생해 투자자나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혔을 경우, 다수의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의 경영진이 특정 계열사에 지원을 해 손실을 입힌 경우, 이는 손해를 가할 목적이 없었고 경영 판단상 이루어진 투자나 지원이기 때문에 배임죄로 처벌해서는 안 되고, 이러한 경우까지 처벌한다면 경영을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형법상 배임죄는 기본적으로 ‘고의범’만을 처벌하고 있고, 현재 검찰과 법원에서는 기업의 경영진이 투자자나 주주를 위해 업무를 수행했다가 결과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사안까지 처벌하지 않는다. 독일법이나 일본법에서 정하는 ‘고의성’이나 ‘목적성’에 이를 정도가 돼야 처벌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경영진이 경영 및 투자를 가장해 기업 오너나 오너 일가, 친·인척들에게 특별한 이익을 주고 투자자나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까지도 ‘경영 판단’이라는 미명하에 면죄부를 주는 경우가 훨씬 많다.

배임죄의 무죄율이 높은 것을 두고 배임죄가 모호해 억울하게 처벌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하나, 이는 오히려 투자자나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히고 특정인에게 이익을 주는 경우까지도 면죄부를 줘 투자자나 주주들에게 억울한 사정이 발생하는 경우라고 평가해야 한다.

기업의 형태, 투자의 유형이 다양하고 복잡할수록 배임죄의 판단이 어려울 수 있다. 배임죄가 폐지될 경우 일반 투자자나 주주들이 복잡한 기업 경영 형태, 투자 유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 경영자들은 경영 판단이라는 검은 베일 뒤에서 불특정 다수를 먹이 삼아 배를 불리게 될 것이다.

배임죄 폐지 논의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종지부를 찍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재계의 배임죄 폐지 주장은 법조계 실무는 물론이고 국민 정서와도 매우 동떨어진 주장이므로 자제해야 할 것이다.

조순열 변호사(법무법인 문무 대표)

무리한 경영진 기소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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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 그룹의 회장들이 근래 대거 전과자가 되었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회사)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에 처벌받는 범죄다.

 배임죄로 처벌받은 기업인이 한국에 특히 많다. 기업총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임원회의 때도 배임죄에 대한 검토는 필수사항이 되었다. 이사회나 주주총회의 결의를 통과한 사안도 배임죄로 걸릴 수 있다. 이사회 결의에 붙인 사안을 대표이사가 집행하고 그 결과 배임행위로 귀결된다면 그 사안을 추진한 임원은 회사에 남아 있을 수 없다. 임원이 대표이사에게 범죄를 사주한 꼴이 되기 때문이다. 임원 딴에는 경영상의 판단 아래 대표에게 충심 어린 건의를 했을 것이나 그것이 범죄로 될 수 있다면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것이 낫다. 기업인에게 요구되는 과감한 도전정신은 애초 기대할 수도 없다.

 배임죄는 과거에는 금융기관 임원의 불법대출과 부당대출 행위에 적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사업에 실패한 경영자에게 적용되기 시작하더니 오늘날에는 대기업 그룹의 회장이나 대표에게 주로 적용되는 범죄가 되어 가고 있다. 배임죄는 최근에 유죄판결도 다수 나왔지만 무죄판결도 여러 건 나왔다. 배임죄는 무죄판결의 빈도가 일반범죄보다 월등히 높다. 무죄판결은 검찰의 입장에서는 악몽이나 다름없으므로 뜨거운 감자다. 검찰의 입장에서는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장기간 수사했음에도 수사 결과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견디기 어렵다. 그러므로 다소 무리하게 기소하게 된다. 검찰로서도 배임죄 처리가 고민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판결은 더 나간다. 법문에는 본인이 손해를 입어야 하며, 자기 또는 제3자가 재산상의 이익을 취했어야 이 범죄가 성립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현재의 판결은 손해 발생의 위험이 있었다고 해 유죄를 인정한다. 계열회사 간에 대출한 경우나 채무를 보증한 경우 그룹 전체가 무너지지 않는 한 대출금 변제가 불가능하거나 보증책임을 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럼에도 그룹 총수가 B사를 위해 A사가 보증을 하도록 지시한 것은 A사가 손해를 볼 위험에 빠뜨린 것이므로 배임죄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처벌의 기준이 되는 금액은 보증한 금액 전체다. 그 이유는 실제로 보증책임을 진 일이 없어서 피해금액을 확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손해 볼 위험이 있었던 총금액이 범죄금액이 된다. 변제가 가능했다는 것은 양형 참작 사유에 불과하다. 이러고도 억울해하지 않을 피의자가 있겠는가.

 한국 형법의 배임죄는 1907년 일본 형법상의 배임죄의 잔재다. 그 뿌리는 독일의 1532년 카롤리나 형법전이다. 중세 봉건 영주가 배덕(背德)한 신하를 다스리기 위해 만든 범죄가 배임죄다. 그러므로 이 범죄는 봉건 영주들이 호령했던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프랑스·벨기에 등에만 존재하는 범죄이고 독법계 국가인 일본과 한국에만 존재하는 범죄다. 근대에 와서는 사회기강을 바로잡을 목적으로 부활된 것이다.

 배임죄의 본질은 신뢰위반인데, 신뢰위반은 윤리문제이므로 민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옳다. 민법에서 불법행위를 금하고 있으며 상법에서 이사의 자기거래금지, 기회유용금지, 경업금지 등 이사의 충실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위반 시에는 위법행위 유지(留止)청구, 주주대표소송,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 등 법은 다양한 구제수단을 마련해 두고 있다. 혹시 이것으로도 부족하다면 민사적 차원의 구제방법을 더욱 정밀하게 보완하는 것이 옳다. 과잉형법의 정점에 배임죄가 있다. 검찰은 근래 배임죄 기소율을 대폭 낮추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많은 기업인은 배임죄의 공포에 떤다. 배임죄를 폐지해 과감한 경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옳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