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암 생존자 100만, 암 치료 환경은 "진화 중"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 고려대 안암병원 유방내분비외과 정승필 교수

국립암센터가 120만 명에 달하는 암 생존자에 대한데이터를 모아 ‘암 생존자 빅데이터’ 분석을 하겠다고 한다. 암 생존자는 암이 완치됐거나 오랫동안 재발 없이 생존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수술 같은 급성 치료를 마치고 재발이나 전이를 막기 위한 보조 치료를 받는 환자들도 폭 넓은 의미의 암 생존자다. 암 치료 후의 생활 습관 등 이들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암 재발을 막고, 치료 후 생존율을 더 높일 수 있는 관리 시스템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이른 바 ‘암 생존자 100만 시대’로 돌입하면서 암 생존자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암 환자들이 과거보다 더 오랫동안 건강하게 생존하면서 이제 암 치료뿐만 아니라 암 이후의 삶까지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암 생존자들은 일상으로 복귀한 후 신체적·정신적으로 그 이전과 너무나 다른 변화를 겪게 된다. 생활 습관을 고치고, 정기적인 검사를 받는 것은 기본이요, 만성 질환도 조심해야 하며, 암 자체가 주는 심리적 충격과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필자가 진료하는 유방암 환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생존율이 90%에 이르지만 재발률이 높아, 당장의 치료 결과가 우수하더라도 장기적인 보조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 수술 전후로 이뤄지는 항암치료, 표적치료, 항호르몬제치료, 방사선치료 등의 보조치료는 수술만큼 중요한 치료방법으로, 이 보조치료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는 환자들을 종종 접한다. 유방암 수술로 인한 신체적 변화 뿐 아니라 보조치료로 인한 여성성의 변화, 가족과 직장 생활 등의 사회 관계에 관한 두려움을 진료실에서 호소한다.

언젠가 한 환자가 치료 받는 일이 너무나 괴롭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부작용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잊을만 하면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는 일 자체가 힘들단다. 재발을 막기 위해 꼭 필요한 치료라는 것을 알지만, 병상에 누워있다보면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잊고 있던 ‘암’에 대한 온갖 생각, 불안이 뒤섞여 심한 압박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또한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대기와 치료를 받는 시간까지 더해 반나절 이상을 보내니 그 시간이 너무 길고 아깝다고 한다.

최근 발표된 ‘유방암 환자의 치료와 일상생활 조사’에서도 비슷한 고충을 읽을 수 있었다. 유방암 환자 둘 중 한 명은 통원이나 입원과 같은 치료 과정으로 인해 일상 생활과 신체적 활동에 제약을 느꼈다고 답했는데, 주목할 만한 대목은 환자들이 치료와 삶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 '외모변화가 없어지는 것(61%)'과 비슷하게 '대기나 입원, 투약시간이 줄어드는 것(60%)’이 중요하다고 꼽았다는 것이다. 이는 유방암 환자들이 가장 고통스러워 하는 외적 변화 못지 않게 치료환경 자체도 암 생존자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대기나 입원, 투약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느라 고생하는 환자들의 마음을 의료진들도 모를 리 없다. 최근에는 병원에서도 환자들이 편안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환자 중심으로 치료 환경을 개선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국내 주요 병원의 유방암 전문센터에서 볼 수 있는 다학제 협력진료는 각 과별 전문의들이 팀을 이뤄 다각도의 검사와 진료를 진행함으로써 환자별 맞춤 치료를 통해 치료효과를 높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수 있다. 또한 유방암 표적 치료의 경우 주사 투약 시간을 2분까지 획기적으로 줄인 혁신적인 제형도 최근 개발되어 잠깐 시간을 내 병원을 방문하면 될 정도로 치료가 간편해졌으며, 암 수술을 마친 환자에게 재활이나 운동방법, 영양상담, 심리상담 등을 제공하는 등 암 환자에게 특화된 진료 서비스를 펼치는 의료기관도 많아지고 있다. 치료 환경이 환자의 치료와 삶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암 치료는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지만, 암 생존자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은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암 생존자도 만성질환자처럼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시대인만큼 새로운 시각으로 환자를 바라보는 변화가 필요하다. 여기에 암 생존 이후 환자의 치료와 삶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인식까지 더해진다면, 100만 암 생존자를 위해 보다 진화된 관리·치료 환경을 갖춰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인기기사]

·척추수술 오해와 진실…받으면 통증 없어질까 [2016/01/11] 
·새해부터 의료계-한의계 갈등 증폭 [2016/01/11] 
·폐암 절반은 발견 시 ‘4기’…남성, 여성보다 2배 많아 [2016/01/11] 
·세계 건강보장 기관 대표 한 자리에 [2016/01/11] 
·신장이식, 혈액형 안 맞아도 ‘안전’ [2016/01/11] 

정승필 교수 기자 webmaster@jhealthmedia.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위 기사는 중앙일보헬스미디어의 제휴기사로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중앙일보헬스미디어에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