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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셰어링 30분에 7500원 택시와 비슷 … 반납 지점 적어 불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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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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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인 서울 잠실에 도착해 골목길을 몇 차례 돌았지만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다. 스마트폰을 꺼내 주차장 공유 애플리케이션인 ‘모두의 주차장’에 도움을 청했다. 이 앱은 주차공간을 보유한 사람이 위치와 빈 시간대를 입력하면 다른 사람이 앱을 통해 이를 확인하고 해당 장소에 주차한 뒤 비용을 결제하는 서비스다. ‘모두의 주차장’을 운영하는 모두컴퍼니는 현재 서울 송파·용산·성북구 등 10개 구와 제휴를 맺고 공유 대상 주차장을 거주자우선주차구역까지 확대했다. 근처에 이용 가능한 거주자우선주차구역을 선택하고 차를 세웠다. 요금은 한 시간에 1200원. 애초 해당 구역을 배정받은 주민은 나중에 구청에 거주자우선주차료를 낼 때 주차장 공유로 결제된 금액만큼을 감면받는다.

[세상 속으로] 공유경제 1박2일 체험해보니

 ‘소유’보다 ‘접근’에 방점을 둔 모습이다. 전 세계적으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공유경제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정의를 따르면 공유경제는 개인 간에 물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서로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사용하지 않는 집이나 차에서 집밥과 재능, 경험 등 다양한 유·무형 자산으로 그 영역을 점차 넓혀 가는 추세다. 해외에선 수백만 달러짜리 개인 저택을 빌려 주거나(원파인스테이) 남은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공유(레프트오버스와프)하는 앱까지 등장했다.

 이처럼 공유경제가 확산되는 데는 스마트폰의 위력이 절대적이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손가락 터치로 전 세계의 모든 유휴 자산에 접근할 수 있다. 그만큼 자산을 소유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든 것이다. 카셰어링(차량 공유)이 대표적이다. 굳이 차를 사지 않더라도 필요할 때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근처의 공유차량을 찾아서 이용하면 된다. 경기연구원은 카셰어링 한 대당 승용차 16.8대를 대체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인구 밀도가 높고 스마트폰 보급률이 83%에 달하는 한국은 공유경제를 실현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다양한 업종의 스타트업(신생 벤처) 기업이 앞다퉈 공유 비즈니스에 뛰어들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아직 한국의 공유경제는 초기 단계라 가야 할 길이 멀다. 1박2일 동안 스마트폰을 활용해 생활 속 공유경제를 체험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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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차를 집에 두고 출근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카셰어링 서비스인 ‘쏘카’에 접속해 걸어서 10분 거리의 빌딩 지하에 주차된 공유용 승용차를 빌렸다. 차를 타기 전 뒤편에 긁힌 자국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어 뒀다. 수리비를 둘러싼 책임 공방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회사 주변의 지정 장소에 차를 반납한 뒤 사무실에 도착하니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자가용으로 출퇴근할 때보다 20분 정도 더 소요됐다. 왕복이 아닌 편도 서비스는 차량 반납지점이 많지 않은 게 흠이었다. 비용은 30분에 7500원으로 택시 요금과 비슷했다.

 약속 장소로 이동할 땐 전기차 셰어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씨티카’를 타 봤다. 비용이나 유지 측면에서 아직 전기차를 사기엔 부담이 있지만 빌려 쓰는 건 한결 맘이 편하다. 회사 근처 공용주차장에 있는 전기차를 예약해 서울시청에서 잠실까지 이동했다. 전기차답게 주행 소음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3시간 반을 사용한 뒤 본래 위치에 반납하고 1만4700원을 냈다. 기름값 부담이 없다는 게 전기차 공유의 가장 큰 장점이다. 반면 1회 충전으로 80㎞까지밖에 달릴 수 없어 먼 거리 이동에는 아직 불편한 점이 많다.

 혹시 시내에 별도의 개인 사무공간이 필요하다면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공유사무실)를 찾으면 된다. 하루에서 1년 단위까지 일정 금액을 내고 하나의 사무공간을 개인이나 업체가 같이 쓰는 방식이다. 벤처기업이 많은 서울 강남 테헤란로 일대엔 코워킹 스페이스가 밀집해 있다. 강남역 인근의 코워킹 스페이스인 아이디어팩토리는 하루 1만원, 한 달 30만원의 이용료를 받는다. 사무실 임대 대신 1년여 동안 이곳을 이용하고 있는 최윤정 ‘가치가’ 대표는 “강남역 인근에서 일하면서도 비싼 임대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며 “얼마 전엔 사무실을 공유하는 정보기술(IT) 전문가에게 홈페이지 제작을 맡기는 등 협업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퇴근 후 평소처럼 집으로 향하는 대신 스마트폰을 켜고 에어비앤비 앱을 열었다. 에어비앤비는 비어 있는 방이나 집 전체를 여행자에게 빌려 주는 대표적인 숙박 공유 서비스다. 서울 종로구에서 한옥을 빌려 주는 호스트(집주인)를 발견하고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그는 집을 비워 주고 가족들과 머문다고 했다. 아담한 한옥집 안에는 인근 맛집 정보부터 쓰레기 분리 배출방법까지 호스트가 남긴 메모가 세세히 적혀 있었다. 호텔 같은 서비스를 기대할 순 없지만 집마다 가진 특유의 문화를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게 숙박 공유가 가진 매력이다. 1년 넘게 한옥 공유를 해 온 정진아씨는 “게스트와 앱을 통해 지속적으로 소통함으로써 단순한 숙박이 아닌 집을 같이 쓴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육아의 가장 큰 부담 중 하나인 아기 옷도 공유경제를 통해 해결 가능하다. 안 입는 옷을 서로 주고받는 ‘키플’ 사이트를 통해서다. 작아서 못 입는 옷을 사이트 운영업체에 택배로 보내면 가치를 매겨 포인트를 준다. 그러면 이 포인트를 이용해 다른 사용자가 내놓은 옷을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공유경제 속에도 비효율은 적지 않게 숨어 있다. 공유 주차장의 경우 대부분 주택가에 위치해 있어 주차 후 목적지까지 걸어가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린다. 게다가 서울 명동이나 강남역, 홍대 입구 같은 대표적인 번화가에서는 공유 주차장을 찾을 수 없다. 결국 접근이 문제였다. 김동현 모두컴퍼니 공동대표는 “현재 서울시내에서 4000면가량의 주차구역이 공유되고 있다”며 “구청별로 주차 기준과 제도가 전부 다르다 보니 구청마다 일일이 협의를 통해 조례를 개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공유경제가 영역을 넓혀 갈수록 실정법과의 충돌도 잦아지고 있다. 현행법상 내국인이 숙박 공유 서비스를 이용하는 건 불법이다. 한옥만 가능하다. 외국인에 한해서만 가정 민박을 허용한 법 규정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 호스트에게 취재 목적을 밝히고 예약을 문의해 보니 내국인은 받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해 9월에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집을 빌려 준 주부 A씨(55)가 숙박업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부산지법에서 벌금 70만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우버(차량 공유 서비스)·에어비앤비 등 플랫폼 기반 기업과 이용자를 대상으로 세금을 제대로 거둘 수 없는 현실적 난관도 있다. 돈을 벌면 소득세를 내야 하는데 현재 빈방을 빌려 주는 공급자 대부분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사용자에게 신뢰를 주면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공유경제 성공의 핵심 키워드로 꼽았다. 또 공유경제가 다양한 영역에서 보편화되려면 접근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더 많은 사람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세대별 접근성을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유경제=물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경제 시스템. 사용자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집과 차에서 공간·재능까지 유·무형의 자산을 공유할 수 있다.

천권필·김영민 기자 feeling@joongang.co.kr

[S Box] 우버·에어비앤비는 공유경제 아니다 ?

2008년 ‘공유경제(Sharing economy)’를 개념화한 미국 하버드대의 로런스 레시그 교수는 “공유경제는 실물 자산을 직접 소유하는 대신 잉여 자원을 다른 사람과 함께 사용하는 ‘협력적 소비’”라고 정의했다.

국내에서 ‘공유경제’ 논란을 불러일으킨 우버택시를 보자. 창업 초기인 2009년 우버는 미국에서 스마트폰 앱을 통해 차량 이용 희망자와 시간 여유가 있는 차량 소유자를 연결해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국내에 도입된 우버택시는 2013년 렌터카 업체에서 대량으로 리무진 차량을 빌린 뒤 기사와도 고용 계약을 체결했다. 스마트폰 앱으로 우버택시를 호출하면 달려가는 방식이었다. 전화로 택시기사를 호출하는 ‘콜택시 서비스’나 다름없는 형태였지만 무허가 영업이었다.

에어비앤비도 마찬가지다. 서울 홍대·북촌만 하더라도 오피스텔 4~6채를 빌려서는 이를 관광객들에게 재차 임대하는 사업자가 늘어나고 있다. ‘남는 방을 빌려준다’는 창업 당시 구호와는 다른 형태로 바뀐 것이다.

이 때문에 우버와 에어비앤비를 공유경제 대신 ‘온디맨드(On-demand·주문형) 서비스’로 분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남는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눈다’는 공유경제와 달리 온디맨드는 ‘요구가 있을 때 언제든지 제공한다’에 방점을 둔다. 그래서 차량이나 집이나 미리미리 충분히 준비해둔다.

안병익 건국대 정보통신대학원 겸임교수는 “공유경제와 온디맨드 서비스 사이의 교집합은 ‘플랫폼(앱·웹)’뿐”이라며 “공유경제가 협력적 소비에 중점을 둔다면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온디맨드는 사용권의 판매를 통해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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