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한국 떠나는 스티븐 라운즈 美공보참사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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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의정부 여중생 사망 사건 당시 우리가 좀더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습니다."

세 차례에 걸쳐 모두 11년간의 한국 근무를 마치고 다음주 워싱턴으로 귀임하는 주한미국대사관의 스티븐 라운즈(60) 공보참사관. 그는 지난해 6월 발생한 여중생 사망사건이 단순 교통사고에서 반미(反美)시위로 확대된 배경에는 대사관 공보책임자인 자신의 잘못도 있었다며 '내 탓'을 했다.

사건이 발생하자 주한미군사령관과 무한궤도차량 운전병들은 희생자 집을 방문, 조의를 표했다. 미군들도 촛불을 들고 영내에서 추모행사를 가졌다. 그러나 이 같은 미국 측 움직임은 광화문 촛불시위 등으로 사태가 악화될 대로 악화된 다음에서나 알려졌다.

"사건 초기에 제가 좀더 적극적으로 뛰었어야 했는데…결국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은 셈이 됐죠."

1980년 7월 풋내기 외교관으로 한국에 부임한 라운즈 참사관이 처음 맡은 임무는 당시 재야인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 측과의 접촉이었다.

"당시는 광주민주화항쟁 직후라 분위기가 살벌했습니다. 김영삼씨가 가택연금 당했을 때는 최기선(전 인천시장)씨 등과 만나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지요."

그때 서울 상도동에 드나들면서 안면을 익힌 崔씨와는 허물없는 친구 사이가 됐다. 그가 한국에 대해 낙관하는 것도 그런 상황을 가까이서 지켜본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 닥치더라도 한국민들은 스스로 극복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뉴욕 출신인 라운즈는 원래 인디애나주 구스타프대에서 찰스 디킨스를 강의하던 영문학자였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멕시코에서 연구활동을 하던 동생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77년 국무부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외교관으로 필리핀.그리스.독일.네덜란드 등에서 근무했다. 물론 그 가운데 한국 근무 기간이 가장 길다.

그는 부인 샘 라운즈와 4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이중 막내딸(루스 라운즈)은 서울에서 얻었다. 외국인들의 봉사기관인 국제여성협회(SIWA) 회장을 맡고 있는 샘 라운즈도 한국 문화와 생활에 푹 빠져 있다. 라운즈 참사관은 "내가 이제 미국에 돌아갈 때가 됐다고 하자 아내는 '그럼 김치를 실컷 먹고 돌아가자'며 서운해 하더라"고 전했다.

라운즈가 한국을 떠나면서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앞으로 설악산을 올라갈 기회가 없어진다는 것. 등산과 마라톤을 즐기는 라운즈는 지금까지 북한산.지리산은 물론 설악산을 10여 차례 올랐다.

"보름 전에도 비를 맞아 가면서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습니다.산꼭대기에 올랐을 때 그 통쾌한 기분은 오르지 않은 사람은 모르지요."

미국에 돌아가서도 그의 남다른 '한국 인연'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외교 일선에서 물러난 라운즈는 워싱턴 해군참모대에서 미해병 간부들의 교육을 담당하게 된다.

"교육과정에 한국방문 일정이 포함돼 있습니다. 서울에 자주 오겠습니다." 그는 석별의 아쉬움을 이렇게 달랬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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