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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안중근이 울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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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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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새해 벽두, 술 한 잔을 선물받았다. 중국 단둥(丹東)에서 카톡으로 받은 남북화합주다. 눈치를 채셨겠다. 실물이 아니라 사진이다. 보낸 이는 중국 다롄(大連)외국어대 김월배 교수다. 안중근(1879~1910) 의사 유해를 찾기 위해 11년째 중국에서 살고 있다. 4년 전부터 안 의사가 순국했던 뤼순(旅順)감옥 초빙연구원으로 있다. 그는 새해를 단둥에서 맞았다. 압록강 단교(斷橋)를 바라보며 남한의 하이트 맥주와 북한의 대동강 맥주를 섞어 압록강에 한 잔을 붓고, 통일의 염원을 담아 거푸 두 잔을 마셨다고 보내왔다. “2016년 첫 새벽에 중국의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전제 조건인 남북한 협력이 조속히 이루어지길 희망한다”고 썼다.

 안 의사가 묻힌 곳은 확실하지 않다. 문서에는 뤼순감옥 공공묘지로 명기돼 있다. 묘지는 현재 감옥 인근에 남아 있다. 안 의사 유해를 찾을 가장 유력한 장소다. 발굴을 위해선 땅속을 투시하는 ‘레이더 조사’가 필수적이다. 당시 일반 사형수가 원통형 관에 선 채로 묻힌 것과 달리 안 의사는 소나무 침관(寢棺)에 안장됐다고 기록돼 있다. 유해를 찾으면 DNA 검사도 할 수 있다. 정부는 안 의사 후손의 DNA를 2009년에 채취해 놓았다.

 중국은 일단 긍정적이다. 지난해 11월 방한한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유해 발굴에 협조해 달라”는 우리 황교안 총리의 요청에 “안 의사는 중국 국민에게도 영웅이고 관계기관 간 협력방안을 계속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 정부는 남북이 협의해 온다면 허락해준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안 의사는 북에서도 영웅이고, 또 고향이 황해도 해주이기 때문이다. 공이 남북 당사자의 손으로 되넘어온 형국이다. 안타깝게도 새해 전망은 어둡다. 북한은 6일 4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동북아 정세가 다시 ‘시계 제로’에 빠져들었다. “북남 대화를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신년사는 닷새 만에 공수표로 날아갔다. 죽음 앞에서도 ‘동양평화론’을 부르짖었던 안 의사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김 교수의 편지를 받은 이튿날 서울 효창공원에 갔다. 1946년 백범(白凡) 김구 선생이 조성한 안 의사 가묘(假墓)에 참배했다. 지난해 광복절에 심은 ‘안중근 무궁화’가 비석 없는 묘를 지키고 있었다. 백범이 친필로 쓴 ‘유방백세(遺芳百世)’도 눈에 띄었다. 안 의사의 ‘꽃향기’를 후세에 남기는 일, 다시금 신발끈을 바짝 조일 때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