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임금 명세서 제출' 자영업자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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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에서 중국음식점을 하는 이모(50)씨는 종업원을 2~3명 고용한다. 이씨는 지난해까지 연간 매출이 6000만원에 못 미치는 무기장사업자로 그동안 업종별 단순경비율에 의해 필요경비를 인정받았다.

그는 올해부터 한 가지 더 신경 써야 할 일이 생겼다. 고용한 종업원들에게 준 봉급 내용을 정리해 매년 2월 세무서에 제출해야 한다. 이씨는 "종업원에게 지급한 임금을 신고하면 덩달아 종업원 몫의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4대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며 "임금에다 보험료 부담까지 더하면 장사하기 힘겨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상당수 영세 자영업자는 종업원에게 지급한 임금 내용을 축소 신고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정부는 임금 명세를 신고하지 않거나 허위로 신고하면 임금 지급분의 2%를 가산세로 물릴 방침이지만 400만여 명에 달하는 자영업자가 제대로 신고했는지 일일이 확인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 때문에 올해 정부가 저소득 근로자의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도입한 지급조서(봉급받는 사람의 인적 사항.금액.지급 시기 등을 기록한 자료) 제출 의무화를 놓고 연초부터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지급조서 제출 의무화=지난해까지는 숙박업이나 음식점업의 경우 연매출이 1억5000만원 미만인 자영업자는 종업원에게 준 임금 액수 등을 신고하지 않아도 가산세를 물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부터 모든 자영업자는 종업원에게 준 임금 내용을 연 1회(상시 근로자) 또는 4회(일용 근로자) 관할 세무서에 신고해야 한다.

재경부 소득세제과 김낙회 과장은 "일은 하지만 소득이 낮은 저소득층에게 지원하는 근로소득보전지원세제(EITC) 등을 도입하려면 저소득 근로자의 소득 파악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골프장 캐디, 파출부, 퀵서비스 배달원 등의 소득 내용을 골프장이나 파출부 중개업체 등에서 제출하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반발하는 영세 자영업자=2004년 말 기준으로 자영업자가 주로 내는 종합소득세 신고대상은 436만 명이다. 이 중 연소득이 508만원(4인 가족 기준)이 안돼 세금이 면제되는 자영업자는 47.5%(207만 명)다.

이들은 세금이 면제될 정도로 소득이 낮은 상황에서, 종업원에게 준 임금 내용을 신고하면 4대 보험 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장사가 더 어려워진다며 반발한다. 그동안 영세한 자영업자 중 상당수는 종업원을 위한 건강보험.국민연금 등을 내지 않았다. 종업원도 자주 이직을 하다 보니 임금에서 일정액을 떼 국민연금 등으로 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한국음식업중앙회 관계자는 "정부가 400만 개에 달하는 자영업자가 제대로 지급조서를 냈는지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며 "영세한 음식점 등은 4대 보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종업원 임금을 낮춰 신고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더욱이 골프장이나 파출부 중개업체는 자료를 허위로 제출하더라도 처벌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균관대 안종범 교수는 "저소득 임금 근로자의 소득을 파악하기 위한 이런 제도의 도입은 필요하지만 제도가 불편하고 실효성이 떨어진다면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윤.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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