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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태어난 아이에게 … “고맙다 미안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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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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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논설위원
고용노동선임기자

청년실업은 만병의 근원이다. 저출산과 불황을 몰고 오는 주범이다. 별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다. 아이를 낳으려면 결혼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직장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겨우 직장을 잡아 가정을 꾸려도 걱정이다. 전셋값을 비롯한 팍팍한 삶이 기다린다. 그래서 허니문 베이비는 좀 미뤄야 할 듯하다. 숨 좀 돌릴 만해서 아이를 낳으면 육아가 걱정이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게 다반사니 아이를 돌보기엔 역부족이다. 좀 크면 교육비가 만만찮다. 첩첩산중이다. 이러다 보니 낳아도 기껏해야 한 명이다. 이마저도 최대한 미룬다. 청년 일자리에서 출발한 현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얽힌다. 한국의 출산율은 1.3명으로 세계 최하위다.

 출산율은 경제와 직결된다. 일할 사람이 줄면 세금도 준다. 부동산 시장은 직격탄을 맞는다. 일본 대도시 인근 베드타운의 집값이 4분의 1토막 나지 않았는가. 소비도 덩달아 위축될 수밖에 없다. 불황의 시작이다. 그 와중에 기성세대는 노년층으로 옮겨간다. 이들에 대한 복지 지출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생산가능인구의 변화를 보면 이런 추세를 금방 읽을 수 있다. 2013년 청년층과 중년층, 장년층의 비중은 23:49:29였다. 이게 2023년엔 18:42:40으로 바뀐다. 청년의 어깨는 더 무거워진다. 취업해서 노년층 복지비를 대느라 허리가 휜다. 연금은 바닥을 칠 테고, 일본처럼 빚을 내(국채 발행) 노인복지를 유지할지 모른다. 2030년이면 국가 파산위기에 몰린다는 경고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적어도 청년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면 저출산을 잡고 불황을 타개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런데 청년은 경쟁률 100대 1을 넘나드는 대기업만 본다. 이를 탓할 수만도 없다. 중소기업과 격차가 워낙 커서다. 이 격차가 줄어야 청년실업을 해소할 길이 열린다. 일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신입사원 임금 차이가 연간 200만원 안팎이다. 대졸자의 70% 이상이 취업하는 게 이상하지 않다.

 일본은 1980년대 말부터 임금체계를 호봉제에서 역할·성과급으로 바꿔왔다. 기간제 근로자의 고용기간은 5년이다. 파견 근로자 사용기간은 사실상 사라졌다. 제도 개혁으론 모자랐는지 요즘은 의식 개혁이 한창이다. 핵심은 일과 가정의 병행이다. 출산율 1.8명(현재 1.43명)을 달성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자료 수집차 들른 일본에서 ‘일하는 방식 바꾸기’에 대한 방송 보도를 접했다. 이토추(伊藤忠)상사 사례다. 이 회사는 지난해 5월부터 아침에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잔업(초과근무)은 상사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직원의 40%가 이런 근무 형태를 택했다. 저녁 시간이 풍성해진 건 물론이다. 회사도 덕을 보고 있다. 잔업수당이 7% 줄었고, 택시비(일본은 잔업을 하면 택시비를 준다) 20%, 온난화 가스배출량 8%, 전기사용량이 6% 감소했다. 일본 정부는 올해부터 국가공무원을 대상으로 이런 식의 유카쓰(ゆう活)제도를 전면 시행한다. 일본판 저녁이 있는 삶 운동이다. 민간 부문에선 2013년 현재 44.8%인 연차휴가 사용률을 2020년에는 70%까지 끌어올리려 한다. 이 같은 인식전환운동이 가능한 건 제도 개선이 뒷받침하고 있어서다.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유연한 고용시장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선행됐다는 얘기다.

 한데 우리는 어떤가. 성장만 바랄 수 없는 형편이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5분기 연속 0%대 성장률을 경험했던 터다. 그렇다면 제도 개혁이라도 해야 한다. 이건 기성세대의 양보가 없으면 안 된다. 고연봉으로 누릴 것 다 누리고, 나이 들어서는 청년이 낸 세금으로 부양받는 건 부도덕하다. 국회를 비롯한 기득권을 중심으로 수서양단(首鼠兩端·구멍에 머리를 내밀고 나갈까 말까 망설이는 쥐)이 판을 치니 최소한의 양심마저 내팽개쳐질까 걱정된다.

 올해 태어난 아이가 2040년이면 24세가 된다. 그때 1인당 부담해야 할 복지비는 500만원에 육박한다. 병신년 새해 아이 울음소리가 반가우면서도 미안하다.

김기찬 논설위원·고용노동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