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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대호' 탄생기 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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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흔적까지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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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의 CG는 '베를린'(2013, 류승완 감독) '군도:민란의 시대'(2014, 윤종빈 감독) 등을 작업했던 특수효과 업체 포스 크리에이티브 파티에서 맡았다. 이들은 살아 숨 쉬는 듯한 호랑이를 만들기 위해 11단계의 세심한 공정을 거쳤다. 현장에서 나무판으로 대호의 위치를 가늠하고 찍은 촬영본(사진1)이 CG의 기본 바탕이 됐다. 여기에 대호의 얼굴·몸통·다리 등을 만드는 모델링 작업이 이어졌다. 조용석 VFX 슈퍼바이저는 “조선범의 육중하고 위압적인 모습을 부각하기 위해 실제 모델보다 다리와 어깨뼈 부위의 부피를 키웠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든 덩어리에 뼈를 심어 구조를 만드는 리깅(Rigging) 작업 후, 로토스코핑(Rotoscoping· 실사 모델 위에 애니메이션을 그려넣는 방식) 기법으로 호랑이의 움직임을 표현했다(사진2). 제작진이 직접 동물원에서 촬영해온 호랑이 영상이 도움이 됐다.

다음 단계는 황갈색 털과 흰 털, 검은 털을 표현하기 위한 바탕색 작업이 이뤄졌다(사진3). 그 위에 호랑이가 실제처럼 보이도록 부위 별로 털을 한 올 한 올 얹었다. 길고 빳빳한 콧등 털은 별도로 손봤다. 이게 끝이 아니다. 배경과 호랑이가 어우러지도록 현장의 바람과 광량을 계산해 털의 흔들림이나 밝기를 재조정했다. (사진4)가 완성본이다. 극 중 대호는 포수들이 공격의 강도를 높일 때마다 온몸에 상처가 많아진다. 조 슈퍼바이저는 "멀쩡한 대호, 상처난 대호, 피투성이 대호 등 대호 한 마리를 총 다섯 단계로 만들었다"며 "실은 다섯 마리의 대호가 있었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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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사진6

얼굴 CG팀이 대호의 얼굴을 만들며 가장 염두에 둔 것은 조선범의 위용이다. 조선범의 특징인 이마에 왕(王)자를 새겨 산군의 카리스마를 완성했다. “최민식 같은 강렬한 힘이 느껴졌으면 좋겠다" “오래된 상처가 있으면 좋겠다”는 박훈정 감독의 주문에 따라 중년 남성의 중후함과 고된 시간을 헤쳐온 세월의 흔적을 가미했다. 얼굴 근육과 주름에 150여 개의 컨트롤러(변화 지점)를 넣어 대호의 표정도 다양하게 연출했다. 대호의 얼굴에서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건 눈동자가 없는 왼쪽 눈이다. 박 감독은 "선천적으로 한 쪽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살아남은 대호의 범접할 수 없는 생명력을 그리고 위해" 이 같은 설정을 집어넣었다. 조 슈퍼바이저는 “대호가 왼쪽 귀를 자주 움직이는데, 왼쪽 눈이 안 보여 왼쪽 귀가 유달리 발달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제작진은 백내장 안구를 참고하려다, 영물의 신비로운 느낌을 배가하기 위해 눈 안쪽에 이물질을 넣어 푸른빛이 돌게 만들었다.

이 솜뭉치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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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팀은 현장에서도 분주했다. CG 호랑이가 실제 화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려면 현장의 빛과 바람 등을 꼼꼼히 점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울처럼 사물을 비추는 크롬 볼(Ball), 회색 석고 재질의 그레이 볼, 호피 무늬의 호랑이 퍼(Fur) 볼, 그레이 퍼 볼을 준비했다. 크롬 볼은 어안 렌즈처럼 대상을 왜곡해 인물의 위치·바람의 세기 등 현장의 모든 상황을 기록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장치다. 그레이 볼은 화면 속 채도와 빛과 그림자의 방향을 측정하고, 그레이 퍼 볼과 호랑이 퍼 볼은 호랑이 털이 바람과 빛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가늠하게 한다. 제작진은 대호가 설 자리에 볼 장비를 세우고 여러 상황을 체크했다. 볼 장비가 CG와 실사를 잇는 일등 공신이었던 셈이다.

시속 80Km의 몸놀림, 어떻게 찍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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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대호는 바람처럼 날렵하고 어떤 맹수보다 사납다. 포수대와의 전투 장면에서 대호의 거칠고 잔혹한 공격성은 스크린을 압도한다. 대호의 액션을 총괄한 허명행 무술감독은 "호랑이는 달릴 때 시속 80㎞에 육박하고 한 번 뛰면 앞으로 5m이상 나아갈 정도로 점프력이 대단하다. 사냥할 땐 엄청난 속도로 상대에 덤벼들어 앞발로 때리고 물어뜯는다"며 "사람을 물고 걷는 호랑이 사진을 보았는데 마치 개가 인형을 문 것처럼 가뿐하더라. 극중에서 산군으로 나오는 대호는 실제보다 더 거칠고 힘있게 그리려고 했다”고 말했다. 동물 액션이 처음이었던 허 감독은 촬영지에서 호랑이 탈을 쓰고 그 움직임을 흉내내보기도 했다. 하지만 호랑이의 스피드와 앞발의 타격감은 인간이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허 감독의 사전 지식과 상상을 토대로 CG팀에 의뢰해 액션 시퀀스를 애니메이션(프리비쥬얼)으로 만들었다. 이 애니메이션은 현장에서 대호의 움직임을 파악하는데 결정적 도움이 됐다.

'대호'의 촬영은 상상력의 향연이었다. 이모개 촬영감독은 “종이 박스와 비닐 등을 동원해 대호와 똑같은 크기의 가짜 모형을 만들어 화면 속에서 어떤 크기로 담길지 예측했다”고 말했다.(사진1) 대호가 나오는 장면은 많은 경우 4번씩 촬영했다. 첫 번째는 가짜 모형을, 두 번째는 대호의 모션 액터 곽진석을, 세 번째는 네 개의 볼 장치를, 네 번째는 빈 화면을 찍었다. 모두 CG 작업의 토대를 닦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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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이 감독의 촬영 컨셉트는 대호를 제외한 모든 배경과 인물을 세트가 아닌 실제 현장에서 촬영하는 것이었다. 세트라는 인상이 묻어나면 산과 대호가 상징하는 자연의 경외감이 전달되지 않을 것이란 염려 때문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과연 깊은 산 속에서 시속 80km에 달하는 대호의 움직임을 카메라에 담아낼 수 있느냐는 거다. 산세가 험해 카메라를 유연하게 움직이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제작진의 묘수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일직선으로 잇는 와이어를 설치하는 것이었다.(사진2) 여기에 전동 모터가 달린 카메라를 매달아 대호만큼의 속도를 확보했다. 대호가 숲에 숨어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점 쇼트' 역시 이렇게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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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이 감독과 허 감독은 “액션만큼 중요한 건 대호의 심경 변화를 몸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두 차례 벌어지는 대호와 인간들의 전투 장면이 그 예다. 이 감독은 “대호가 처음 사람들 앞에 등장하는 첫 번째 전투 장면에서는 ‘너희가 나를 어떻게 잡으려고?’라고 겁을 주는 모습을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낮은 곳에 있는 인간들이 바위 위에 선 대호를 올려다보듯 촬영한 까닭이다. 또 일본군 병력이 동원된 두 번째 전투 장면을 두고 허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마치 무협 영화에서 고수와 고수를 꺾으려는 한 무리의 싸움처럼 그리려 했다. 대호가 목숨을 내놓고 독이 바짝 올라 눈에 보이는 모든 인간을 닥치는 대로 물어뜯도록 액션을 구성했다.” 그는 “총을 맞고도 앞으로 돌격하는 대호는 사람으로 치면 상남자 같은 캐릭터”라고 말했다.

대호의 포효에 고릴라 울음소리가 섞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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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대의 공격을 받고 피투성이가 된 `김대호씨`.

대호의 우렁찬 포효는 사실 호랑이와 고릴라의 울음소리를 합성한 것이다. 음향을 담당한 모노콘 김창섭 대표는 “고양이과에 속하는 호랑이는 자신을 감추는 데 능한 동물이라 길게 울지 않는다. 길고 우렁차게 우는 고릴라 소리를 합성해 풍부한 발성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호랑이 소리는 야생 동물의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미국 믹싱 회사인 사운드독스에 작업을 의뢰했다. 전세계 다양한 음향 자료를 보유한 사운드독스는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시베리아 벌판에 방목하며 키우는 야생범의 소리를 녹음해왔다. 복병은 대호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소리를 찾는 일이었다. 슬프거나 화가날 땐 어떤 소리를 낼까? 이런 질문에 사운드독스 측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소리를 찾고 있는 것 아니냐"며 "동물 소리 전문 성우에게 의뢰하라"고 면박을 줬다. 성우는 인위적이라고 여긴 제작진은 결국 수많은 동물 소리를 연구하고 합성해 대호의 다양한 감정을 만들었다. 김 대표는 "영업비밀이라 모두 밝힐 순 없다"며 한 가지만 공개했다. 새끼의 사체 앞에서 '으엉'하며 흐느끼는 소리는 사자가 배고플 때 내는 소리라고.

사람을 넘어서는 명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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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호랑이 CG를 얹히려고 만든 푸른 천 더미에 최민식이 눈·코·입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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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의 대호. 대역 곽진석이 파란 보드 복을 입고 홀로 걷고 있다. 그 뒤를 호랑이 인형 `김대호씨`가 따라 가는 중

대호의 연기 뒤엔 박훈정 감독의 세세한 디렉션이 있었다. 예컨대 대나무숲에서 피투성이가 된 대호와 천만덕이 만나는 장면에선 "대호가 만덕의 말에 꼬리를 흔든다거나 직접적인 반응을 하지 않도록 했다. 만덕이 '나를 원망하냐'고 물어도 대호는 무심하게 있어야한다. 동물의 본능과 의인화 사이에서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박훈정 감독)고 설명했다. 스태프들이 꼽은 대호의 명연기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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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진석이 포효하는 대호를 연기하고 있다.

이모개 감독은 포수대 구경(정만식)과의 마지막 결투 장면을 뽑았다. 사력을 다해 올가미에서 벗어난 대호는 구경을 물어 던지고 길게 포효한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고도 대호는 악에 받쳐 비틀거리며 자리를 떠난다. 마치 ‘내가 이곳의 주인이야’라는 듯이. 사람이 나오는 액션영화에 버금갈 만큼 강렬한 장면이었다.” 이 감독의 말이다. 조 슈퍼바이저는 대호가 죽은 새끼를 물고 와서 앞발로 건드리며 혀로 핥는 장면을 꼽았다. “새끼를 잃은 아비의 마음은 동물이나 인간이나 마찬가지라는 걸 보여주는 가슴 찡한 장면이었다. 대호는 산의 제왕이지만, 자식을 끔찍이 여기는 아비이기도 한 것이다."

숨은 주인공, 호랑이 더미

‘대호’의 촬영 현장엔 호랑이를 형상화한 각종 더미와 호랑이 인형이 상주하고 있었다. 최민식은 항상 호랑이 인형을 안고 다니며 “이 분이 귀한 분이야”라고 추켜세웠다고.

김효은·김나현 기자 hyoeun@joongang.co.kr 사진 NEW 영상=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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