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국·일본 갈등 이렇게 본다

동북아 다국간 협의로 풀어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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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제관계는 생각보다 복합적 상호 의존의 특성을 띠는 경우가 많다. 발생하는 사건들이 정치.경제.외교.안보.문화 등의 다양한 차원에서 복합적으로 연계돼 있어 단순한 힘의 논리로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정치와 경제의 분리원칙이 작용하기도 하고 상호 복합적으로 연계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한반도와 주변국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복합적 상호 의존의 틀에서 다양한 차원의 요인을 고려해 분석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양국 외무장관 회담이 아무런 해법을 마련하지 못한 채 격렬한 대립의 모습을 보이고 끝난 것도 다양한 차원에서 분석해 볼 수 있다.

우선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빚어낸 부분이다.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부족함은 중국인뿐 아니라 한국, 나아가 아시아인들의 분노를 야기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한국은 국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으며,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같은 일본의 후안무치에 분노를 넘어 인간으로서 수치심마저 느끼고 있다.

여기다 일본은 중국을 상대로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을 새롭게 주장해 영토분쟁의 불씨를 지폈다. 특히 일본이 동중국해의 가스전 개발 사업권을 자국 기업에 허가하겠다고 해 중.일 간 해양경계선 문제가 자원개발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양국 간에는 첨예한 군사안보적 갈등도 존재한다. 일본은 중국의 대만 독립 저지를 위한 '반국가분열법'에 미국과 함께 공개반대를 천명했고, 방위백서를 통해서는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명시함으로써 중.일 간의 군사안보적 갈등을 표면화시켰다.

중.일 간의 갈등에서 볼 수 있듯이 동북아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가 불완전했기 때문에 그 후유증이 아직도 역사.영토.경계.자원 등의 다양한 분쟁요인으로 표출되곤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본의 역사인식 전환이 필요하지만 동북아 국가들이 국가주의에 기초한 국익 갈등의 차원을 넘어서 평화공존의 이념하에 다국간 협의를 개최, 공동 협력을 제도화해야 한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영토분쟁 등에 있어서의 도발적 행동은 일본 정계의 우경화 경향을 반영한다. 일본의 자민당 정부는 미.일동맹의 강화기인 미국의 현 부시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 보수우익적인 국가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해 동북아에서의 세력 확대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힘입어 군사력을 증강하면서 러시아와 안보협력, 인도 및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 자유무역협정 추진 등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세력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현 단계에서는 안정적 경제성장을 국가의 우선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일본과의 갈등 심화보다는 분쟁을 조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독도 문제에서도 그랬듯이 중.일 간의 갈등에도 직접 개입하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사태를 관망하려 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일본에 미군기지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대 중국관계가 대립 갈등으로만 치닫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클린턴 민주당 정부 때는 미.중 관계가 미.일 관계보다 돈독한 적도 있었다. 미국과 중국은 현재 교역.투자.외환 및 공채보유 등에서 긴밀히 연계돼 있어 상호 심각하게 대립하기보다 오히려 글로벌한 이슈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형성, 세계경영의 파트너 관계로 발전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한국은 이런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생존 번영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을 기초로 한 개방형 중립성의 균형외교를 취하면서 다자체제 틀 형성을 통한 안정과 평화유지에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미국의 세력균형 역할과 한국의 가교 역할이 적절히 조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김성철 세종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