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증' 받은 최경환 "돈 풀어 빚만 늘렸다는 평가 가장 속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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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할 때 너무 암담했다. 부총리로 지명됐다는 뉴스를 보고 '왜 내가 이런 십자가를 지나'는 생각도 했다. 세월호 사건 이후 6개월간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고 경제주체도 자신감을 잃고 있었다. 절박한 심정에서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 우리 경제가 자칫하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따라간다'는 얘길 했다. 하루도 위기감 없이 넘어간 날이 없었다. 있는 머리, 없는 머리 안해본게 없다 싶을 정도로 많은 고민을 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밝힌 재임 1년 반의 소회다. 30일 오후 세종 기획재정부 기자실에서 가진 송년 간담회 자리에서였다. 후임인 유일호 부총리 후보 내정으로 '제대증'을 받은 터라 어느 때보다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다만 그를 주축으로 한 2기 경제팀이 노력과 성과에 비해 '박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아쉬움도 표출했다. 특히 "돈 풀어 빚만 늘렸다는 평가가 가장 속상하다"고 했다. "재정 '마중물' 없었다면 우리 성장률은 1%대에 그쳤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올해) 2.7%의 성장은 1인당 소득이 2만달러가 넘고 인구가 2000만이 넘는 세계 20개국 중 스페인, 미국 다음의 3등 정도의 수준"이라고 말했다. 성장률의 절대 수치는 낮지만 전 세계가 저성장 국면에 빠진 상황을 감안하면 상당히 선전을 했다는 반박이다.

특히 재정 투입과 금리 인하 등 단기 부양책만 구사해 결과적으로 국가 부채와 가계 빚만 잔뜩 늘렸다는 일부의 평가에 대해선 구체적 수치를 들어 해명했다. 그는 "1년반 동안 투입한 총 재정이 95조원 가량인데 이 중 상당부분이 융자와 보증이다. 실제 국가부채와 직접 관련이 있는 건 16조원 정도다. 어느 부총리가 왔더라도 이 정도의 재정 보강은 불가피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가계 부채와 관련해서도 "가계는 돈 값이 싸졌으니까 자산을 늘리고 투자를 하고, 그런 과정에서 대출도 는 것"이라면서 "가계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양면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풀린 돈이 생산적인데 쓰였느냐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서 "기업 부채가 늘면서 생산적인 활동으로 갔다면 가장 좋은 상황이지만 일부 좀비기업이 연명하는 부분이 있어 앞으로 정리를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조개혁을 지속 추진해야 한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그는 "내 취임 일성은 구조개혁이었다"고 상기시킨 뒤 "어느 부총리라고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못느꼈을까만은 욕 먹기 싫어 뒤로 미룬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구조개혁은 고통이 따르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며 "이제 첫단추를 꿴 데 불과한 만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고 성과가 시간을 두고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장 아쉬운 점으로는 청년 일자리 문제를 풀지 못한 점을 들었다. 그는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청년들로부터 '이제 취직 좀 되기 시작했다'는 얘기였지만 경기 문제나 구조적인 문제가 속시원히 해결되지 못했다. 후임에 숙제로 남겨놓고 가서 아쉽다"고 말했다. 향후 계획과 관련해선 "선거 잘 치르고, 당에서도 나름대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그만두면 당장 몇일은 쉬고 싶다"고 털어놨다.

조민근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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