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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끼리 연애 흔한 일 … 중간에 쉴 때 뜨개질 하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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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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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오케피’는 오케스트라 피트(orchestra pit)의 약자다. 연말 대형 뮤지컬 중 유일한 신작이다. 황정민이 지휘자역과 연출을 했다. [사진 샘컴퍼니]

황정민 주연·연출로 화제인 뮤지컬 ‘오케피’(내년 2월 28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는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석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기다. 술에 취한 연주자를 대신해 전 단원이 ‘땜빵’하느라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공연보단 양다리·삼각관계 등 연애질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누군 집에서 키우던 토끼를 데려오지 않나, 무대감독의 요청에 지휘자는 객기를 부리고, 경마에 빠져 연주는 아예 뒷전인 경우도 발생한다. 배꼽을 잡으며 드는 생각, 과연 그럴까?

뮤지컬 ‘오케피’ 속 무대 아래 풍경
뮤지컬 오케스트라석에 무슨 일이
김문정 음악감독이 말하는 진실

 그래서 물어봤다. 자타 공히 국내 ‘넘버 1’이라는 김문정 음악감독에게 실제로 오케스트라석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말이다. 작품의 묘사가 과장인지, 아니면 현실에 가까운지에 대해 “예, 아니오”로 답하게 했다. 김 감독은 이 작품의 진짜 음악감독이자 지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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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정 음악감독

 - 공연 도중 여배우가 컨디션이 나쁘다며 음을 낮추자고 하나 .

Yes “막 오르기 30분 전, ‘감독님, 오늘 목 너무 안 좋아요. 한 음만 내려주세요’라는 경우가 가끔 있다. 솔직히 귀찮다. 단지 음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각 악기별로 악보를 다시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찌하겠나, 배우가 노래를 잘 불러야 우리도 사니. 그리고 꼭 여배우만 까다롭고 신경질을 부린다고 짐작하지 마시길. 웬만한 국내 뮤지컬의 주인공은 대부분 남자다. 이름 알만한 이들도 꽤 있다. ”

 - 작품에선 지휘자가 전 부인과 아리따운 하프 연주자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단원끼리 정분 나는 게 흔한가 .

Yes  “우리 팀은 정단원 10명, 부단원 20명이다. 실제 부부도 세 커플이나 된다. 지금 연애 중인 이들도 몇몇 있다고 들었다. 매일 같이 다니고, 하루종일 얼굴 보고, 딱히 다른 이들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여건이다. 이 안에서 해결(?)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겠나. 단원끼리 눈맞고 연애하며 얽히고설키는 건 비일비재하고 흠도 아니다. 다만 연주에 지장을 주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나는 누가 연애한다는 얘길 들으면 두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너도 좋고, 너도 좋아. 그러니 헤어지지마. 난 두 사람 헤어져도 둘 다 함께 갈 거야. 깨지면 너희만 껄끄럽고 불편해. 그거 견딜 자신 있으면 헤어지든지.’”

 - 갑자기 연주자가 펑크를 내는 경우도 있나.

Yes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 때 우리 연주단 악장이자 드러머가 부친상을 당했다. 우린 성탄이라고 캐럴 부르고, 선물 주고받고 그랬는데, 크리스마스 당일 낮공연 끝나고 전하더라. 어찌나 미안한지…. 그러면서 ‘오늘 저녁 공연까진 책임지지만 내일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딴 연주자 찾느라 혼쭐 뺐다. 다행히 밤새 전화를 돌려 신인급 연주자 구하고, 다음날 일찍 만나 몇 번 연습해서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 연주 안 하는 시간에 서로 떠들고, 공연장 밖으로 나갈 수 있나.

No  “노래 사이에 길면 20분을 대기하는 경우도 있다. 마이크가 달려 있어서 소리를 내면 안 된다. 잡담 금지, 음식물 반입 금지, 게임 금지, 무엇보다 휴대전화 사용은 절대 불가다. 자리를 떠서도 안 된다. 책을 읽는 건 괜찮고, 여성 연주자 중엔 가끔씩 뜨개질을 하는 경우도 있다.”

 - 작품에선 배우에 대한 비평만 있고, 연주에 대해선 기사 한 줄 안 나온다고 제작진이 서운해 한다. 실제로도 그런가.

Yes  “어렵게 편곡해서 멋들어지게 연주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솔직히 섭섭하긴 하다. 다들 배우가 어떠니, 무대가 어떠니 하며 눈에 보이는 것만 말하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만 그런가. 백스테이지에서 일하는 스태프가 얼마나 많은가. 따지고 보면 모든 분야에서 주목받는 이들은 1%일 뿐이다. 이 공연은 단순히 오케스트라 연주자 이야기가 아니다. 숨어 있지만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며 우리 사회를 든든히 지탱해주고 있는 99% 보통사람들을 향한 헌사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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