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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영화의 거리’ 60년 지킨 빵집 문닫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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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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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전주시 완산구 고사동 ‘영화의 거리’를 지켜온 명물 제과점이 60년 만에 문을 닫는다. CGV영화관 앞의 ‘동그라미제과’다. 전주 시민은 물론 매년 5월 열리는 전주영화제 방문객이면 누구나 한 번쯤 찾는 명소다.

동그라미제과 전서봉 대표
영화제 땐 장사진 이루던 명소
“대기업 가맹점에 밀려 힘들어”

 이 제과점의 대표 전서봉(69·사진)씨는 27일 마지막 빵을 구웠다. 오전 7시에 나와 가게 문을 열고 밀가루 반죽과 성형 등 작업을 거쳐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빵을 구워냈다.

 전씨는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정성스럽게 구운 빵의 일부를 주변 친구와 친지·단골 고객에게 돌렸다. 앞으로 며칠 간 남은 빵을 팔고 연말께 폐업할 계획이다.

 전씨는 “빵집이 대기업 가맹점에 밀려 갈수록 힘들어지고, 자식들도 모두 커 이제 은퇴할 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한평생 운영해 온 가게를 접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적지 않지만 고심 끝에 문을 닫기로 했다”고 말했다.

 동그라미제과의 기원은 1956년 문을 연 ‘호남제과’ 였다. 전씨는 76년 호남제과를 인수해 상호를 동그라미제과로 바꿨다. 오랜 세월을 증명하듯 제과점 앞의 영화관은 ‘삼남극장→피카디리극장→CGV’로 간판을 세 번 바꿔 달았다.

 이 제과점은 80~90년대만 해도 고객이 종일 몰려 때론 다음 날 제품을 미처 준비 못 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주변 극장가로 쇼 공연을 온 하춘화·남진·이은하 등 가수들이 들러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 영화제가 열릴 때면 제과점을 찾은 감독·배우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기도 했다.

 전씨는 19세부터 제과·제빵 일을 배우기 시작해 태극당·한양제과·이화당 등 전주시내 유명 제과점을 거쳐 동그라미제과점을 차렸다. 몸이 아파 누웠을 때를 제외하고는 1년 내내 빵을 구웠다. 설이나 추석 명절에도 가게 문을 닫지 않았다.

 이처럼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자식농사도 남부럽지 않게 지었다. 1남2녀 모두 대학을 나와 교사와 공무원·은행원을 하고 있다. 전씨는 자식에게 모범을 보이겠다는 생각에 빵을 구우면서도 틈틈이 영어 단어를 외고 회화 테이프도 들었다.

 “후배들에게 ‘최선을 다한 제과인’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전씨는 대형 자본에 밀려 동네 빵집이 설자리를 잃어가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털어놨다. 전주시내의 경우 한때 300개 이상이던 빵집이 현재는 100여 개로 줄었다. 그나마 먹고 살만한 집은 이 중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했다.

 전씨는 “일본이나 이태리에는 2~3대를 대물림하는 빵집들이 많다는 얘기에 부러움을 많이 느낀다”며 “정부·지자체의 정책적 지원과 제과인의 장인정신이 어우러질 때 우리도 100년 이상 장수하는 명문 빵집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전주=장대석 기자 ds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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