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침 중 주먹·발길질 잦으면 치매 전단계 의심

중앙선데이

입력 2015.12.27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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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호 22면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서울 은평구에 사는 박춘화(62·여) 씨는 얼마 전 자다가 봉변을 당했다. 남편이 잠결에 한 발길질에 복부를 맞고 한 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남편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고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단순한 잠꼬대려니’라고 생각했지만 남편의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씨는 남편이 휘두른 주먹에 얼굴을 맞고 멍이 든 날도 있었다. 갑자기 큰 소리로 고함을 질러 한밤에 깨기도 했다. 박씨의 권유로 대학병원을 찾은 남편은 '렘 수면 행동장애 (REM sleep behavior disorder, RBD)' 진단을 받았다.


 렘 수면 행동장애란 사람이 꿈을 잘 꾸는 수면단계인 렘 수면 때 이상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 렘 수면 단계에서는 몸의 모든 근육에 긴장이 풀리고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움직이지 못한다. 하지만 렘 수면 행동장애는 비정상적으로 몸에 힘이 남아 있어 자다가 꿈 속 경험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 쫓기거나 싸우는 꿈, 악몽을 꿀 때 증상이 나타난다. 잠결에 주먹질이나 발길질로 옆 사람을 때리기도 하고 크게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남자가 여자보다 9배나 많이 걸리는 남성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유병률은 60대 이상 노인에서 2%로 외국(0.38~0.5%)보다 높은 편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인영 교수는 “렘 수면 행동장애는 악몽을 꿀 때 주로 나타나기 때문에 과격한 행동을 동반한다”며 “이로 인해 주위에 자고 있는 사람이 다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상(사진 1)인 사람은 뇌 도파민 수용체(가운데 양쪽) 부분이 활성화돼 밝게 나타나지만 렘 수면 행동장애(사진 2), 파킨슨병·치매(사진 3)로 갈수록 어두워진다.

렘 수면장애 50대부터 많이 생겨렘 수면 행동장애는 수면 중 이상행동을 보인다는 점에서 몽유병과 비슷하다. 하지만 두 질환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렘 수면 행동장애는 렘 수면 단계에서만 일어난다. 꿈을 꾸는 동안 증상을 보이고 꿈에서 하는 행동을 그대로 재현한다. 반면 몽유병은 가장 깊은 수면 단계인 비렘(Non REM) 수면 3~4단계에 일어난다. 꿈을 꾸지 않을 때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의학적으로는 몽유병이 아닌 '수면 중 보행장애'로 표현한다.


 또 몽유병은 4~12세의 어린 나이에 발생해 나이가 들면서 사라진다. 반면, 렘 수면 행동장애는 보통 50대부터 생긴다. 몽유병 증상 중에는 잠에서 잘 깨지 않지만, 렘 수면 행동장애는 사소한 자극에도 잘 깬다. 윤 교수는 “국내에서 2년 전쯤 한 할아버지가 자다가 부인을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 본인은 렘 수면 행동장애가 있다고 했지만 정밀검사결과 몽유병이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몽유병은 행동이 정교하고 지속적인 반면 렘 수면 행동장애는 순간적이다. 여러 면에서 몽유병과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외국 연구선 80%가 치매·파킨슨병렘 수면 행동장애는 배우자를 다치게 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파킨슨병과 치매의 전조증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실제 연구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렘 수면 행동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파킨슨병·치매와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세계적 학술지 『슬립(Sleep, 2014)』에 발표했다. 그는 파킨슨병이나 치매로 인해 렘 수면 행동장애가 발병한 경우를 제외한 렘 수면 행동장애 환자 84명을 10년간 관찰했다.


 그 결과 렘 수면 행동장애 진단 3년 후 환자의 9%, 5년 후 18%가 파킨슨병이나 치매 판정을 받았다. 6년 후에는 35%가 진단을 받았다. 윤 교수는 파킨슨 병이나 치매로 진단받은 환자를 제외한 나머지 환자 중 46%에서 인지기능이 저하됐다는 점도 확인했다. 윤 교수는 “연구결과로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백데이터 상 렘 수면 행동장애 진단 후 10년이 지나서는 50%가 파킨슨병·치매 등이 생겼다”며 “외국 연구에서는 이 수치가 80%까지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고 말했다.


 렘 수면 행동장애와 파킨슨·치매의 연관성은 뇌 영상으로도 확인된다. 뇌의 활성화 정도를 볼 수 있는 뇌 스펙트(SPECT) 검사에서 정상인 사람은 도파민 수용체 부분이 활성화 돼 있으나 파킨슨병이나 치매 환자는 이 부분의 활성화 정도가 떨어져 있다. 렘 수면 행동장애 환자는 정상인 사람과 파킨슨병 환자의 중간 형태다.


 렘 수면 행동장애가 진행해서 생기는 치매는 주로 루이체 치매(Dementia with Lewy Bodies)를 말한다. 지난해 사망한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앓았던 병으로 유명하다.


 알츠하이머병은 뇌에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침착해 생긴다. 이에 비해 루이체 치매, 파킨슨병, 다계통 위축증 등은 시누클린 단백질이 침착해 생긴다. 다소 생소한 질환이지만 알츠하이머, 혈관성 치매 다음으로 많이 발생하는 치매 종류다. 알츠하이머병은 기억 저장공간에 손상이 생겨 저장 자체가 안 되지만, 루이체 치매는 정보를 연관 지어 불러내는 데 주로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힌트를 주면 기억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기억력이 감퇴되고 렘 수면 행동장애가 있다면 치매나 파킨슨병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강북삼성병원 신경과 김용범 교수는 “보통 경도 인지장애를 알츠하이머병의 전 단계로 보는 것처럼 렘 수면 행동장애는 루이체 치매와 파킨슨병의 전 단계로 봐야 한다”며 “기억장애와 렘 수면 행동장애가 모두 있다면 이런 질환이 임박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신경안정제로 치료 … 치매 진행은 못막아렘 수면 행동장애는 신경안정제로 대부분 치료된다. 하지만 치매 등으로 진행하는 것을 막는 방법은 딱히 없다. 따라서 조기진단과 치료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윤 교수는 “50대 후반이나 60대인데 악몽을 자주 꾸고 잠버릇이 심하다고 생각되면 기억력 검사와 수면검사를 통해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도 “렘 수면 행동장애가 있다고 몇 년 내에 무조건 치매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진행될 가능성이 다른 사람보다 높다”며 “50~60대에 렘 수면 행동장애 증상이 있으면 치매·파킨슨 병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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